[한마당-김상온] 밤이 없는 세계
입력 2012-10-18 18:31
1968년 미국 과학소설(SF) 작가들은 1965년까지 씌어진 모든 단편 과학소설 가운데 최고 걸작을 선정했다. ‘밤이 내릴 때(Nightfall)’. 아서 클라크, 로버트 하인라인과 함께 SF의 ‘빅 3’로 꼽히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1941년 작.
스페이스 오페라가 주를 이루던 종래의 과학소설에서 벗어나 인간의 조건에 관심을 쏟는 이른바 ‘사회파 과학소설’(social SF;이 역시 아시모프가 만든 말이다)의 전범이 된 이 작품은 랄프 에머슨의 다음과 같은 인용문에 대한 답으로 씌어졌다고 한다. ‘별들이 천년 만에 하룻밤만 나타난다면 그때 드러날 신의 도시를 인간이 어떻게 믿고 사랑하며 수세대에 걸쳐 그 기억을 보존할 수 있겠는가!’
즉 아시모프의 작품은 밤이 없는 세계, 밤을 모르는 세계에 밤이 내릴 때 인간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를 다루고 있는데 그는 모든 사람이 걷잡을 수 없는 공포와 광기에 사로잡힐 것으로 상상했다. 작품 배경은 라가시라 불리는 가상의 행성. 이 행성에는 주항성을 포함해 태양이 6개, 달이 하나 있다. 해가 지는 법이 없으니 당연히 사람들은 밤도, 별들의 존재도 모른다.
그런데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유적에는 과거에 문명이 주기적으로 나타났다가 붕괴한 흔적이 남아있다. 과학자들이 연구한 끝에 알아낸 결과는 천체 운행 상 2049년마다 해가 하나만 뜰 때가 있고, 이때 일식이 일어나 밤이 오게 된다는 것. 그러면 밤의 개념이 전혀 없던 사람들은 ‘완전한 어둠’으로부터 비롯된 공포에 질려 빛을 찾아 모든 것을 불태우는 광기에 휩싸이게 되고, 그때까지 이룩한 모든 문명과 세계는 잿더미로 변한다는 것.
그나마 과학적 사실을 신화화한 종교의 사제들이 미리 문명의 정화를 보존해 놓았다가 세상이 잿더미로 변한 뒤 다시 문명을 일으키는 일이 반복돼 왔는데 소설은 일식과 집단광기가 곧 닥쳐올 시점에서 끝난다. 이 소설을 읽었을 때 느꼈던 경이로움이란!
그런데 그와 비슷한 세계가 현실의 우주에서 발견됐다. PH1으로 명명된 4중 태양계의 행성. 지구에서 5000광년 떨어져 있으며 크기는 지구의 약 6배라고 한다.
2개의 태양 주위를 138일 주기로 공전하며, 또 다른 2개의 태양이 이 쌍성 태양계를 돌고 있다. 따라서 PH1에서 보면 4개의 해가 떠있는 셈이므로 ‘밤이 없는 세계’일 가능성이 크다. 라가시처럼. 다만 가스형 행성인데다 평균 표면온도가 섭씨 251도여서 생명이 존재할 가능성은 작다. 그래도 얼마나 경이로운 세계일 것인가! 우주로 눈을 돌리는 이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