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왜 베르테르의 슬픔은 ‘베르터의 고뇌’가 되었나… ‘창비세계문학전집’

입력 2012-10-18 19:43


창비세계문학전집/창비

출판사 창비가 세계문학전집 시장에 뛰어들었다. ‘창비세계문학’ 1차분은 괴테의 ‘젊은 베르터의 고뇌’를 시작으로 리처드 라이트의 ‘미국의 아들’,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도스토옙스키의 ‘지하에서 쓴 수기’, 카뮈의 ‘전락’ 등 7개 언어권의 소설 10종(11권)이다. 1차분 가운데 오스트리아 작가 요제프 로트의 ‘라데츠키 행진곡’과 중국 작가 딩링의 ‘내가 안개마을에 있을 때’는 국내 초역이다.

기획위원인 임홍배 서울대 독문과 교수는 괴테의 소설을 전집의 시발점으로 삼은 이유에 대해 “괴테가 국민문학이나 민족문학이 상호작용을 통해 내적 쇄신을 이뤄 인류보편의 가치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세계문학론을 제창했고 괴테에 대한 문학사적 평가를 종합할 때 창비의 정신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익숙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대신 ‘젊은 베르터의 고뇌’로 제목을 삼은 데 대해서는 “소설 속의 고민들을 드러내기에 ‘슬픔’은 맞지 않아서 ‘고뇌’를 처음 썼고 이름도 독일어 발음을 감안했다”고 말했다.

창비는 앞으로 90종의 소설 가운데 30권 정도는 초역으로 채우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번역 중인 카메룬 작가 페르디낭 오요노의 ‘어느 늙은 흑인 메달’, 우루과이 작가 마리오 베네데띠의 ‘휴전’, 브라질 작가 마샤두 지 아시스의 ‘브라스 꾸바스의 사후 회고록’ 등이 초역작이다.

한기욱 인제대 영문과교수는 “‘창비세계문학’의 특징은 서구 편중 극복과 ‘지금 여기’의 관점으로 우리의 정전(正典)을 재구성하겠다는 편집 방향에 있다”며 “‘정전’이란 본디 고정된 목록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주어진 처소에서 새롭게 재구성됨으로써 생명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발간 취지를 밝혔다. 현재 세계문학전집 시장은 민음사가 약 300권을 번역출간하며 선두를 달리고 있고 문학동네도 다음달이면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모옌의 ‘열세걸음’으로 100번째 책을 출간할 예정이며 문학과지성사와 을유문화사, 펭귄코리아, 시공사도 각각 특색 있는 세계문학전집을 내고 있다. 그만큼 선택의 폭이 넓어진 셈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