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다빈치, 사랑하는 대신 탐구했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

입력 2012-10-18 21:46


레오나르도 다빈치/지크문트 프로이트/여름언덕

자못 흥미진진한 조합이다. 정신분석학자 지크문트 프로이트(1856∼1939)가 르네상스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419)를 분석했다.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을 통해 성적이고 무의식적인 세계를 탐구했고, 다빈치에겐 동성애 꼬리표가 따라붙었기에 구미가 당긴다.

프로이트조차도, 이미 동시대인에게 르네상스의 가장 위대한 대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인정받았던 거장을 도마에 올리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적잖이 있었던 모양이다. “정신의학은 숭고한 존재에 재를 뿌린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정신의학의 의도가 전혀 아니다.”(19쪽)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선보인 프로이트의 저작은 이렇듯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듯 겸손하게 글을 시작한다. 하지만 프로이트가 정교하게 펼친 정신분석의 그물망에 다빈치 또한 보기 좋게 갇힌 것을 발견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다빈치는 예술가로서 화려한 성공가도를 달리자마자 미술보다는 과학 탐구에 매진했다. 동시대인들은 이런 그를 안타까워했다. 작품은 대개 미완성으로 남겨뒀다. 쾌활하고 잘 생긴 멋쟁이였지만, 여자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제자들에 대한 배려 탓에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그를 따라다녔다.

‘사랑하는 대신 탐구했다.’ 프로이트의 다빈치 해석이다. 이런 탐구의 특성으로 급기야 예술과의 연결고리는 끊어지고, 다빈치는 역학의 일반법칙을 발견하거나 지층과 화석의 역사를 밝히는 데 몰두했다.

다빈치의 이런 삶의 근거를 프로이트는 또한 꿈에서 찾는다. 다빈치가 남긴 무수한 노트 중 어린 시절 정보를 적어 놓은 딱 한 구절에서 말이다. “요람에 누워 있을 때 독수리 한 마리가 내려오더니 꽁지로 내 입을 벌리고 여러 번 꽁지로 내 입술을 치는 것이었다.”(48쪽)

프로이트는 기억은 변형되고 가공되기에 이 꿈조차 다빈치가 실제라고 믿는 환상이라고 본다. 그러면서 다빈치의 밝지 않은 성장 과정에 이를 연결시킨다. 다빈치는 사생아처럼 태어나 어머니는 있지만 아버지는 없는 존재였다. 그런데, 독수리는 이집트 신화에선 어머니의 상징, 그러면서 암수동체다. 어머니에게 키스를 당하는 기억이 이 환상으로 대체됐다는 것인데, 바로 이 수수께끼 같은 독수리 환상을 골똘히 생각하면서 사물에 대해 탐구하는 습성이 몸에 뱄다는 것이다.

이런 무의식은 작품에도 배어든다. 그 유명한 ‘모나리자’의 미소는 바로 친어머니의 재현이라는 것이다. 더 흥미 있는 건 ‘성 안나와 함께 있는 성모와 아기 예수’에 대한 해석이다. 그림에서 예수의 외할머니 성 안나는 성모와 비슷한 연배로 보일 만큼 젊게 그려져 있다. 그래서 예수가 마치 두 어머니 사이에 있는 것처럼 보이며, 이는 친아버지 집에서 계모와 함께 잠시 생활해야 했던 유년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프로이트는 말한다.

책이 주는 기대치 않은 즐거움은 프로이트의 문학적인 문장들이다. 비유가 생생해 뭇 팬을 거느린 그의 힘이 명쾌한 분석과 더불어 문학성에서도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광일 옮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