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훈의 현대시 산책 감각의 연금술] (35) 모스부호를 치는 토끼의 발명… 시인 김성대

입력 2012-10-18 18:10


지상의 마지막 데시벨을 좇는 시심

‘귀없는 자’의 불구성에 대한 언어실험


김성대(40)의 성장기는 짧은 발신 전류(점·dot)와 긴 발신 전류(선·dash)로 이루어진 모스부호 같다. 모스부호의 점과 선처럼 이어질 듯 끊어지는 분절된 시기를 보냈기 때문이다. 태어난 곳은 강원도 인제이다. 직업 군인인 아버지의 군부대가 인제에 있었다. 하지만 탯줄을 끊은 곳이 인제일 뿐, 그는 중학교 입학 전까지 아버지의 부임지를 쫓아 무수히 이사를 다녔다.

대구 부산 찍고 강원도 화천으로, 조치원 광주 찍고 다시 인제로 귀환했으되 그것도 잠시. 초등학교를 네 군데나 다녔기에 그는 친구를 깊이 사귈 기회가 없었다. 아무리 이어 붙이려고 해도 모스부호처럼 분절된 초등학생 시절을 끝으로 서울에 정착, 중고교를 졸업했지만 그는 유목민적 습성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대개 고교를 졸업하면 대학, 재수, 취업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되지만 그는 스스로 전국을 떠돌았다. 어디가 좋다 싶으면 그리로 훌쩍 떠났고, 여비가 떨어지면 임시로 일을 구했다.

그렇게 일 년 반의 시간을 보내고 입시 공부에 매진한 끝에 한양대 국어국문학과에 들어갔고, 곧바로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게 2005년이다. 그해 계간 ‘창작과비평’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하지만 그는 등단 직후 잠적하다시피 하며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의 등단은 신혼 생활과 겹친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꼬박 3년을 생활인으로 사는 동안 시를 쓰지 않았다.

시가 다시 찾아온 것은 2009년 가을 무렵. 밤하늘을 수놓는 유성의 무리를 보았을 때 마치 스위치가 켜지듯 다시 ‘시 쓰기 모드’에 들어갔다고 그는 말한다.

“기나긴 결빙을 지나… 결빙의 순간들을… 나누고 나누면… 여기가 바다였다는 걸… 알기나 할까… 자네의 머나먼 복귀 또한… 어쩔 수 없이 빈약한… 재구성이겠지… 실종이라고… 단정 짓지 말게… 공기가 얼어 가는 소리… 지상의 마지막 데시벨일지도 모르겠네… 자네가 거기… 없더라도 괜찮네… 전할 말이…”(‘우주선의 추억’ 부분)

지상과 주고받는 우주선의 모스부호를 나열하고 있는 김성대의 시적 의도는 ‘어쩔 수 없이 빈약한… 재구성이겠지’에 압축돼 있다. 이는 시인으로 다시 돌아왔으되 과거 행적 따위를 빈약하게 재구성해 내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더구나 “실종이라고… 단정 짓지 말라”고 항변하고 있지 않은가. 그는 이 작품을 포함해 데뷔작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시 세계를 담은 전작 시집 ‘귀 없는 토끼에 관한 소수의견’으로 2010년 제29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한다. 그가 발명한 것은 ‘귀 없는 토끼’였다.

“밤의 소리들이 만질 수 없는 귀를 음각한다/ 귀 가득 무엇이 이리 무거울까/ 귀가 뜨거워질 때까지/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귀는 말라 가고 우는 토끼,/ (중략)/ 이 밤을 모으고 있는 눈은 누구의 것인지/ 우는 토끼 속의 우는 토끼/ 돌아보는 눈까지 멈추고/ 한 벌 귀로 남은 밤”(‘귀 없는 토끼에 관한 소수의견’ 부분)

이 구절엔 ‘납굴증’이라는 소제목이 붙어 있다. ‘납굴증’이란 마치 밀랍인형처럼 굳어버린 자세로 멈춰 있는 정신분열증의 일종이다. 실제로 우리 주변엔 납굴증을 앓고 있는 소수자가 의외로 많다. 그는 타인과의 소통은커녕 자기 자신의 정체성조차 확정하지 못하는 우리 시대의 수많은 ‘귀 없는 토끼’들을 호출하고 있는 것이다.

김성대의 시는 우리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존재조건인 ‘듣는다’는 일이 사라졌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실험이기도 하다. 그는 ‘귀 없는 토끼’라는 치명적인 결함을 지닌 존재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자기 정체성을 인식하는 경로를 무자비하게 차단해 버린다. 그가 쏟아낸 시편들은 ‘귀 없는 토끼’들이 눌러대는 모스부호 그 자체이며 이는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처럼, 혹은 납굴증 환자처럼 ‘말하는 것’과 ‘듣는 것’이 동일하지 않은 세계가 지속될수록 여전히 유효한 기호인 것이다.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