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상위계층 ‘아동 학대’ 수급계층보다 심각

입력 2012-10-17 22:08


경기도 시흥시에 사는 네 살 지영(가명)이는 올해 초 부모가 이혼하면서 할아버지 손에 맡겨졌다. 할아버지는 회사 택시를 몰았으나 귀가 잘 들리지 않는 탓에 행선지를 알아듣지 못해 손님이 중간에 내리기 일쑤였다. 허리 통증이 심하지만 손녀딸 때문에 할아버지는 허리띠를 졸라맨 채 일을 계속했다. 급여는 70만원 정도였다. 그러나 지난 두 달간은 몸이 아파서 일하지 못한 날이 많아 급여를 받지 못했다. 회사는 오히려 사납금을 채우지 못했다며 벌금 20만원을 내라고 했다. 결국 부족한 생활비 때문에 최근 사채를 썼고, 이자를 제때 갚지 못해 차에서 자살을 기도했다.

지영이는 집을 나간 아버지가 부양가족으로 잡혀 있어 기초수급을 받지 못하는 ‘차상위계층’에 속한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아동복지연구소는 17일 유엔이 지정한 ‘세계 빈곤 퇴치의 날’을 맞아 ‘아동빈곤가구 복지사각지대 현황 분석’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영이처럼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빈곤 아동은 2009년 기준 41만명에 달했다. 차상위계층 아동이 16만9000명, 상대적 빈곤에 시달리는 저소득 빈곤 아동이 약 24만명이었다. 2012년 빈곤 아동 통계는 아직 잡히지 않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기초수급 대상 아동이 2009년 40만명, 2010년 38만명, 2011년 34만명으로 줄고 있어 복지사각지대의 빈곤 아동은 올해 45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차상위계층 아동들의 학대 문제도 심각했다. 연구소가 이달 초 빈곤 아동 600여명을 무작위 추출해 분석한 결과, 차상위계층 아동이 수급 아동보다 부모로부터 신체적·정신적 학대를 더 심하게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상위계층 아동이 겪는 신체적 학대 심각도는 3.08점(5점에 가까울수록 심각), 수급 아동은 2.12점으로 나타났다. 차상위계층 아동의 정서적 학대 심각도 역시 2.23점으로 수급 빈곤 아동(1.33점)보다 높게 나타났다. 일반 아동은 신체적 학대 1.33점, 정서적 학대 0.88점으로 크게 낮았다. 또 ‘걱정이 있을 때 의논하는 사람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수급 빈곤 아동 중 18%가 ‘있다’고 답한 반면, 차상위계층 아동은 5%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순천향대 사회복지학과 허선 교수는 “수급 아동은 오히려 민간 지원도 받기 때문에 지원이 집중되지만 차상위계층 아동은 사각지대에 놓인다”며 “수급자 선정 기준을 현실화해 사각지대 아동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