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 공방] 재계 “경제민주화 논의로 中·日이 이득 봐”-학계 “이미 강력한 규제 시행 중”

입력 2012-10-17 19:17

정치권이 경쟁적으로 내놓은 경제민주화 정책에 대해 재계와 학계가 공동으로 지적하는 문제점은 경제민주화가 한국경제의 모든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경제민주화 정책들이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재계, “경제민주화 논의로 中·日이 혜택 받아”=서울상공회의소 회장단은 17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만나 회의를 가졌다. 서울상의 관계자는 “회장단 회의는 보통 분기별로 한 번씩 열리는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경제민주화 논쟁이 거세다보니 자연스럽게 이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손경식 대한·서울상공회의소 회장, 김억조 현대자동차 부회장, 김반석 LG화학 부회장, 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 등 13명이 회의에 참석했다.

서울상의 회장단은 경제민주화 논의를 전면 부정하지 않았다. 양극화 해소를 위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 일감 몰아주기 등에 대해선 필요성을 공감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순환출자 금지, 금산분리 강화 등에 대해선 부정적 입장을 고수했다. 지배구조 개편 등 급격한 경제정책 변화는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특히 회장단은 경제민주화 논의가 대기업·재벌 때리기로 변질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회장단은 글로벌 경제위기 상황에 대한 우려도 잊지 않았다. “경제민주화보다 생존이 급선무”라며 “경제민주화 논의로 인해 가장 이득을 보는 곳은 우리 수출 경쟁국인 일본이나 중국기업들”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서울상의 관계자는 “전체적으로 회의 분위기가 무거웠다”면서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을 너무 신속하게 처리하기보다는 충분한 논의를 거쳐 경제불황기를 벗어나는 시점에서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상의나 재계의 대체적 의견”이라고 설명했다. 회의에서는 노동 관련 법제를 강화하고 기업인을 국정감사에 기준 없이 출석 요구하는 정치권에 대해서 쓴소리도 나왔다.

◇학계, “이미 강력한 경제민주화 규제 시행”=한국경제연구원이 주최한 ‘경제민주화 제대로 알기’ 2차 토론회에 발제자로 참석한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치권에서 경제민주화 논의가 촉발된 배경을 설명했다.

이 교수는 “한국 사회는 저성장이라는 외부적 충격으로 발생하는 갈등과 모순을 사회단체가 자율적으로 흡수하고 완화, 조정하기보다 오로지 정치에 그 해결을 위임하는 행태를 보인다”면서 “대통령 선거 정국을 맞아 정치권이 경제민주화를 내걸고 유권자의 표를 구하는 현상도 이 같은 역사적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토론자인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는 “직접세·중소기업 보호정책·재벌정책 등에 있어 새삼스럽게 헌법 제119조2항을 거론하며 경제민주화를 강조하기 이전부터 한국은 이미 오랫동안 경제민주화라 불릴만한 규제와 조정을 강력하게 해왔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160개에 달하는 혜택을 중소기업에 부여한 보호정책은 세계에서 한국이 가장 강력하다”면서 “미국 등은 하나의 시장에서 독점력을 행사하는 시장 집중에 대해 규제하는데 한국은 특이하게도 기업 규모가 큰 일반 집중에 대해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경제연구원 신석훈 박사는 “지난 30년 동안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인 시장논리를 잣대로 시행돼왔던 경제민주화는 헌법상 자유민주주의 원칙과 현실적 시장논리에 기반을 두고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