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회사원’ 소지섭 “시대가 변해도 기억될 배우였으면…”

입력 2012-10-17 18:36


배우 소지섭(35)을 마음껏 보고 싶다면 영화 ‘회사원’(감독 임상윤)을 놓쳐선 안 된다. 우수에 찬 깊은 눈빛, 한 여자만을 사랑할 것 같은 순정, 친구를 위해 목숨도 바칠 것 같은 의리, 운동으로 단련된 근육질의 몸. 이 모든 소지섭의 매력에 한껏 빠질 수 있는 영화다. 그런데 그게 거의 전부다. 액션이 볼 만하긴 하지만 탄탄한 드라마를 원하는 관객은 실망할 수도 있다.

# ‘회사원’의 독특한 설정에 반하다

영화 ‘회사원’은 설정이 독특하다. 소지섭이 맡은 지형도는 넥타이에 정장 차림으로 번듯한 사무실에 매일 출근하는 회사원. 그런데 이 회사, 겉으로는 금속 제조회사인데 알고 보면 살인청부회사다. 냉정함과 차분함으로 실력을 인정받던 형도는 어느 순간 임무 수행에 회의를 느낀다. 회사를 그만두기로 마음먹은 순간, 그 회사의 표적이 된다.

15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소지섭은 “‘회사원’이라는 제목도 좋고 설정도 신선해 마음에 들었다. 실험적이고, 도전 의식이 느껴졌다. 이런 장르의 영화는 한국에서 못 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킬러하면 어둠의 세계에서 음침하거나 건달이거나 혹은 멋진 방식으로 표현됐는데 이 영화에선 그저 회사원이다. 하기 싫어도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 뼈 속 깊이 내성적인 사나이

그는 내성적이고 사람을 잘 사귀지 못해 인간관계가 좁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은 침대에 누워 잠들기 직전. 소지섭은 “직업상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고 신경 쓸 일이 많다. 그래서 잠들기 전 아무도 신경 안 쓰고 쉴 수 있는 느낌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요즘 슬럼프에 빠진 것 같아 불안하다. 안에 재료가 꽉 차 있어서 그걸 막 끄집어 내야 하는데 다 써버린 것 같다. 다시 채워야 하는데 배우라는 직업이 무언의 규제가 많다. 다양성을 경험하기 어렵다. 안을 채우려면 뭘 하면 좋을지 고민 중이다.

소지섭은 연예계에서 ‘완전’ 친한 사람으로 송승헌과 정준하를 꼽았다. 송승헌과의 친분이야 데뷔 초부터 알려진 것이지만 정준하는 다소 의외. 지난해 MBC TV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출연한 것도 정준하와의 친분 때문이다. 그는 “‘무한도전’에서 공을 많이 들여 어느 순간 안 나가면 안 되겠다 싶었다. 거기는 팀워크가 너무 좋다. 개그맨은 머리가 좋아야 한다. 웃겨야 한다는 스트레스도 대단한 것 같더라”고 전했다.

# 남자로서의 우직함 갖춘 ‘소간지’

그는 우직해 보인다. 웬만한 일엔 미동하지 않을 것 같고,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어디 가서 그 말을 옮길 것 같지도 않다. 믿음이 가는 스타일이다.

스타일이 좋다는 뜻의 ‘소간지’라는 별명은 2004년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 이후에 팬들이 붙여준 것.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소중한 별명이다. 나밖에 없는 별명이니까.”

그런데 이 남자, 1996년 초 데뷔해 올해로 17년차. 대중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한 게 2004년이니 꽤 오랜 무명시절을 거쳤다는 얘기다. 그는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잘 버텼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지금이야 ‘소간지’라며 아무거나 입어도 스타일 좋다고 하지만 처음엔 안 그랬다. 그윽하고 우수에 젖은 눈이 문제였다. “‘너는 눈 때문에 안 된다’고들 했다. 시대가 원하는 눈 스타일이 아니었다.”

장동건 한재석 송승헌 등 꽃미남 스타일이 한창 인기를 끌 무렵이었다. ‘배우하지 마라’는 얘기도 수없이 들었다. 데뷔 후 시트콤, 주말·미니 드라마 등 일일 아침 드라마 빼고 모든 드라마를 했고, 쇼 프로그램의 보조 MC도 했지만 사람들은 그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그는 “솔직히 연기나 일이 좋아서 한 건 아니고 돈벌려고 했다”고 고백했다. “하다보니 재미있고 점점 잘하고 싶어졌고, 지금은 연기가 너무 좋다”고 말했다.

# “즐기면서 살아. 죽도록 일만 하지 말고”

소지섭이 이 영화에서 던지고 싶은 물음은 하나다. 관객들이 “나 지금 행복한가”를 생각해보길 바란다는 것. 다들 하루하루 살기 바빠서 내가 지금 행복한지, 일을 즐기고 있는지조차 생각할 겨를도 없기 때문이다. 소지섭도 그랬다. 그는 “지금은 꾸준히 이런 질문을 던지고, 나는 행복하다고 세뇌하는 단계”라며 웃었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 “즐기면서 살아. 죽도록 일만 하지 말고”라는 대사가 있다. 소지섭이 직접 감독에게 말해 넣은 대사다. “정말 이 말은 꼭 하고 싶었다”는 그는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너무 쉽다. 그런데 자기가 행복하지 않으면 다른 이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 그래서 스스로 행복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