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최현수] 신뢰 위기 자초한 軍

입력 2012-10-17 18:35


미국의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후임자에게 가장 먼저 알려주고 싶은 조언이 있는데, 군인이라는 점 때문에 군(軍)문제에 대한 장군의 견해가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미 육군소장이었던 H R 맥매스터가 그의 책 ‘직무유기(Dereliction of Duty: Lyndon Johnson, Robert McNamara, the Joint Chief of Staff and the Lies That Led to Vietnam)’에서 밝힌 내용이다.

케네디 대통령은 왜 장군들의 의견을 믿지 않게 됐을까. 베트남 전쟁과 관련해 장군들의 평가와 주장이 틀린 경우가 적지 않았고 때로는 거짓말도 있었기 때문이다. 유명을 달리한 지 50년 가까이 되는 케네디 대통령의 말이 떠오른 것은 ‘노크 귀순’ 사건 때문이다. 동부전선에서 발생한 ‘노크 귀순’사건에서 보여준 우리 군 수뇌부의 행동을 보면 케네디 대통령이 남의 나라 군을 거론하는 것 같지 않아서다.

거짓말은 사소한 것이라도 위험하다. 믿음을, 상대에 대한 신뢰를 근본적으로 흔들어놓기 때문이다. 누군가 한 번 거짓말을 했다면 이후 그가 아무리 진실한 말을 한다 하더라도 ‘혹시나’ 하는 의심을 떨쳐내기 힘들다. 이번 ‘노크 귀순’ 사건으로 군은 참 많은 것을 잃었다. 최전방 경계에 구멍이 뚫렸다는 작전상 허점이 노출된 것뿐 아니라 사기를 먹고 사는 군에게 생명과 같은 ‘신뢰’를 잃었다.

‘역사의 종말’이라는 책의 저자로 유명한 미국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학교 민주주의·개발·법치주의센터 연구원은 또 다른 저서 ‘트러스트(신뢰)’에서 경제적 번영에서 신뢰가 갖는 역할을 분석했다. 그가 말하는 신뢰란 ‘어떤 공동체 내에서 구성원들이 보편적인 규범을 기반으로 규칙적이고 정직하고 협동적인 행동을 할 것이라는 기대’이다. 구성원들이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도 담겨 있다.

후쿠야마는 신뢰의 부재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고 말했다. 한 국가의 복지와 경쟁력은 그 사회가 지니고 있는 신뢰의 수준에서 결정되는데 신뢰도가 낮은 사회는 서로 믿지 못해서 발생하는 비용을 꽤나 지불하게 된다는 것이다. 신뢰가 높은 사회에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행동을 하게 되고 내지 않아도 되는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서로 믿을 수 있어 자연스럽게 형성된 신뢰가 아니라 억지로 믿어야 하고 믿어줘야 하는 ‘강제된 신뢰’라도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이란다.

공자도 신뢰를 개인과 조직에 가장 중요한 존립기반이라고 말했다. 그는 ‘논어(論語)’에서 ‘인이무신 부지기가야(人而無信 不知其可也)’라 했다. 믿음을 주지 않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다는 말이다. 공자는 이를 수레 끌기에 비유했다. 큰 수레에 소를 연결하는데 중요한 끌채가 없거나 작은 수레에 말을 연결하는데 필요한 고삐 고리가 없다면 수레가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냐는 것이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그는 국가를 이끌어 나가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족식(足食·경제), 족병(足兵·국방), 민신(民信·사회적 신뢰)을 꼽았다. 이중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 ‘민신’이라고 했다.

이처럼 과거와 현대 동서양을 불문하고 정직과 신뢰란 조직을 유지하는데 가장 필요한 가치임에 분명하다. 특히 국민의 안전과 밀접하게 관련된 군사분야에 있어서야 더 말할 나위도 없다. 2010년 4월 16일 김태영 전 국방장관은 천안함 폭침으로 46명의 꽃다운 병사들을 잃은 데 책임을 통감한다는 대국민사과를 했다. 2년 6개월 뒤인 지난 15일 김관진 국방장관은 ‘노크 귀순’에 대해 대국민사과문을 읽고 고개를 숙였다. 더 이상 이런 일로 고개 숙이는 국방장관들을 보고 싶지 않다. 김관진 장관은 “우리 군을 믿고 지켜봐 주실 것을 당부드린다”며 사과문을 마무리했다. 말만으로 신뢰가 살아날 수 있겠는가. 당부의 말이 아니라 신뢰가 실릴 수 있는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