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명희] 오보

입력 2012-10-17 18:35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은 올바른 보도와 관련해 “진실을 존중하여 정확한 정보만을 취사선택하며”라고 명시하고 있다. 기록과 자료를 조작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천명하고 있다. 국민일보는 사랑, 진실, 인간을 사시로 내세우고 있다.

모든 언론들이 진실 보도를 천명하지만 지나친 특종 경쟁과 마감시간에 쫓겨 종종 오보(誤報)를 내곤 한다. 오보가 전쟁도 일으켰다. 1898년 2월 쿠바 아바나 항에 정박 중이던 미국 해군 전함 메인호가 갑작스런 폭발과 함께 침몰하면서 해군 266명이 사망했다. 미국 신문들은 당시 쿠바 영유권을 놓고 분쟁을 벌이던 스페인군의 소행이라고 단정짓고 ‘메인호를 기억하라’는 슬로건으로 보복을 선동했다.

여론이 빗발치자 미국은 두 달 뒤 스페인에 선전포고를 했고, 미국과 스페인 간 전쟁이 4개월이나 지속됐다. 110여년이 지난 지금도 메인호 사고 원인은 석탄 창고의 자연발화 가능성 등을 포함해 미스터리로 남아있지만 전쟁 중에 희생된 안타까운 목숨들을 어디 가서 하소연할 것인가.

1980년 9월 워싱턴포스트의 재닛 쿡 기자는 헤로인에 중독된 8살 흑인소녀 지미를 주인공으로 ‘지미의 세계’라는 제목으로 탐사보도를 했다. 기사는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듬해 퓰리처상까지 받았다. 하지만 나중에 워싱턴포스트 자체 조사 결과 지미는 가상 인물이었고 기사 내용은 소설이었음이 드러났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지난해 장쩌민 중국 전 국가주석이 사망했다고 오보를 냈다가 몇 달 뒤 모습을 드러내자 사과문을 게재했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1일자에 무고한 시민을 나주 성폭행범이라며 사진을 실었다가 당사자로부터 항의를 받고 오보를 사과했다. MBC는 지난주 새누리당 김근태 의원의 당선 무효형 선고를 전하면서 고(故)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사진을 실었다가 망신을 당했다.

어제 아침에는 한 인터넷매체가 혼성그룹 쿨의 멤버 유리가 술자리 싸움으로 중상을 입어 사망했다고 대형 오보를 내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유리 소속사 측은 “명백한 명예훼손이며 살인과도 같은 무서운 일이다”면서 강력 대응하겠다고 했다.

전화 한 통만 했으면 확인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다른 매체보다 먼저 속보를 전하려는 과욕이 오보를 낳았다. 이래서야 언론이 ‘사회의 공기(公器)’라고 불릴 수 있겠는가. 체면이 말이 아니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