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 멜로의 귀환 ‘착한 남자’… 요즘 안방극장 최고의 화제작으로 떠올라

입력 2012-10-17 18:10


세대를 뛰어넘어 사랑받는 드라마 시장의 스테디셀러를 꼽으라면 역시 멜로를 들 수 있다. 사랑, 배신, 이별, 복수, 삼각관계, 기억상실, 불치병…. 너무나 통속적이어서 진부하게 느껴지는 재료와 양념들. 하지만 실력 좋은 제작진을 만나면 훌륭한 멜로는 눈물의 밥상을 차려낸다. 시청자는 주인공에 동화돼 중독성 강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어느 순간 눈시울을 붉히고 만다.

KBS 2TV 수목극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착한 남자)’는 멜로의 공식을 충실히 따르는 작품이다. 자극적 설정과 억지스러운 전개 탓에 ‘막장’이라는 지적도 나오지만, 요즘 시청자들은 정통 멜로의 귀환에 열광하는 모습이다. 20부작으로 지난달 12일 첫회를 시작해 17일(11회) 반환점을 돈 ‘착한 남자’는 보는 이를 쥐락펴락하는 극본의 힘과 남녀 주인공 송중기(27) 문채원(26)의 호연(好演)으로 현재 안방극장 최고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또 다시 증명된 ‘이경희 파워’=‘착한 남자’는 사랑과 배신, 복수를 중심으로 세 남녀의 얽히고설킨 애증의 스토리를 펼쳐 보인다. 극은 강마루(송중기)와 한재희(박시연)의 사랑이 뒤틀리면서 시작된다. 한재희가 실수로 살인을 저지른 게 발단. 강마루는 그녀 대신 죄를 뒤집어쓰고 교도소에 복역하는데 출소 후 한재희가 태산그룹 오너의 후처가 된 사실을 알고 허탈해한다.

강마루는 결국 복수를 꿈꾸게 된다. 그는 의도적으로 태산그룹 후계자 서은기(문채원)에게 접근한다. 서은기는 강마루의 ‘의도’를 알게 되지만, 그땐 이미 치명적 사랑에 빠진 뒤. 이러한 상황에서 서은기는 교통사고로 기억을 잃게 되고 태산그룹은 한재희 손아귀에 들어간다.

눈치 빠른 드라마 애호가라면 작품 ‘크레디트(Credit·제작진 이름을 자막으로 표시한 것)’를 안 봐도 직감할 수 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2004년), ‘이 죽일 놈의 사랑’(2005년) 등을 써낸 이경희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을. 그는 운명적 사랑이 빚어내는 비극을 그려내는 데 누구보다 능수능란하다.

드라마평론가 신주진씨는 저작 ‘29인의 드라마작가를 말한다’를 통해 이 작가를 ‘피아노’(2001년), ‘봄날’(2005년) 등을 집필한 김규완 작가와 함께 ‘정통멜로 작가’로 분류한 뒤 이 같이 말한다.

“사랑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다소 작위적이고 진부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개성 넘치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창출과 더불어 감성을 자극하는 섬세한 심리묘사와 적절하면서도 유려한 대사들은 이들의 드라마가 일정한 작품 수준과 품위를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86쪽)

이러한 평가는 ‘착한 남자’에서도 유효하다. 출세를 위해 물불 안 가리는 한재희의 표독스러운 행태는 ‘막장 상황’을 만들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지만 정제된 대사와 영상미는 ‘착한 남자’ 전체가 ‘막장’으로 치닫는 걸 막아준다. 드라마평론가 정석희씨는 “말이 안 되는 상황이 많고 등장인물 대부분이 너무 심각해 불편할 때가 있다”면서도 “그렇다고 ‘막장’이라 정의할 순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단점이 많지만 이야기의 흐트러짐이 없어요. 대사의 힘 때문인 거 같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송중기의 연기가 정말 좋아요. 눈빛이나 대사 처리가 아주 훌륭해요.”

◇송중기 문채원의 연기 변신=송중기의 연기력을 칭찬하는 목소리는 이어졌다. 그간 주로 따뜻하고 착한 배역을 맡아온 송중기지만 이번 작품에서 그는 카리스마 강하고 냉철한, 때론 ‘나쁜 남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대중문화평론가 김선영씨는 “송중기는 그 또래 배우 중 최고의 연기력을 갖췄다”고 격찬했다. “지난해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도 호평을 받았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어요. 감정의 높낮이를 조절할 줄 아는 배우예요.”

좋은 평가를 받는 건 상대역인 문채원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해 영화 ‘최종병기 활’, 드라마 ‘공주의 남자’를 통해 ‘청순가련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던 그는 교통사고로 기억을 잃은 지난 10일 방송분(9회) 전까지 위악적이고 당돌한 서은기를 기대 이상으로 소화해냈다. 정석희씨는 “문채원도 어느 정도 연기 변신에 성공했다. 나름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고 말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