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도 힘에 겨워 쉬어 넘는 고갯마루 머리 휙 들어보니 무릉도원이 눈앞일세… 강원 양구 해안분지
입력 2012-10-17 21:46
휴전선과 맞닿은 강원도 양구의 해안분지가 단풍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다. 내금강을 붉게 채색했던 단풍이 가칠봉 군사분계선을 넘어 하산하더니 해안분지를 순식간에 오색으로 물들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주인이 바뀌던 그날의 상처가 너무 깊었던 때문일까. 아침 햇살에 젖은 해안분지의 단풍이 핏빛으로 붉게 빛난다. 해안분지 가는 길은 아직 초가을이다. 햇솜처럼 부풀어 오른 파로호 물억새가 가을을 재촉할 뿐 단풍은 양구군 동면 팔랑리와 해안면 만대리 사이에 우뚝 솟은 해발 1148m의 도솔산을 넘지 못했다. 완전무장한 군인들이 줄지어 행군하고 헬기와 탱크가 전쟁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팔랑리에서 도솔산 남쪽 기슭을 오르자 2008년 개통된 2995m 길이의 돌산령터널이 블랙홀처럼 검은 입을 벌린다.
현대판 무릉도원으로 불리는 해안분지를 한눈에 보려면 지금은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 옛 고갯길을 쉬엄쉬엄 오르는 것이 좋다. 현기증이 일 정도로 가파른 고갯길을 지그재그로 올라 해발 1000m 높이의 돌산령을 넘자 화채그릇처럼 생긴 해안분지가 한 폭의 풍경화처럼 펼쳐진다.
해안분지는 동서 3.5㎞, 남북 7㎞로 서울 여의도 면적의 6배. 중앙이 움푹 팬 분지로 ‘펀치볼(Punch Bowl)’로 더 유명하다. 한국전쟁을 취재하던 외국인 종군기자가 가칠봉에서 본 해안분지가 마치 칵테일의 일종인 펀치를 담는 화채그릇과 비슷해 펀치볼로 명명했다고 전해온다.
화채그릇처럼 생긴 해안분지가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곳은 돌산령 대암샘터에서 아래쪽으로 50m 정도 떨어진 도로변. 무성한 잡목도 이곳만은 피해 가 부채꼴 형태의 해안분지가 온전하게 한눈에 들어온다. 서쪽으로 가칠봉(1242m), 대우산(1179m), 도솔산(1148m), 대암산(1304m)의 능선과 동쪽의 달산령(807m) 등이 해안분지를 타원형으로 둘러싸고 있다. 조선시대에 해안(海安)으로 불렸던 펀치볼은 뱀이 들끓어 바다 ‘해(海)’를 상극인 돼지 ‘해(亥)’로 바꾸면서 뱀이 사라졌다고 한다.
해안분지는 왜 화채그릇처럼 생겼을까? 30여 년 전 어떤 학자는 1000만 년 전에 거대한 운석이 떨어져 생긴 구멍이라고 주장해 화제를 모았다. 2억4700만t짜리 운석이 음속의 200배로 충돌해 세계 최대의 운석 구덩이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반면에 지질학자들은 펀치볼을 둘러싸고 있는 편마암과 가운데의 화강암이 차별적 풍화작용에 의해 생성된 차별침식 분지라고 한다.
어쨌든 이 거대한 분지가 일교차가 큰 맑은 날 가을 아침에 안개를 품은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나 마찬가지. 화채그릇에 아이스크림을 담은 듯 짙은 안개를 최고의 풍경으로 꼽지만 옅은 안개 사이로 보이는 마을의 모습도 환상적이다. 운이 좋으면 커다란 눈망울이 마주치자마자 꽁무니가 빠지도록 껑충껑충 뛰어가는 노루도 만날 수 있다.
마냥 평화롭게 보이는 해안마을이지만 주민들은 오랜 세월을 분단으로 인한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몇 차례에 걸친 치열한 교전으로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남지 않은 황무지에 정착한 사람들은 전국에서 선발된 900여 명의 개척민단. 행여 북으로 탈출하거나 북에서 간첩이 내려와 주민으로 위장하고 있을지 몰라 이들은 오랫동안 외부세계와 단절된 채 살아야 했다.
최근 걷기 열풍을 타고 해안분지에도 3개의 ‘DMZ 펀치볼 둘레길’이 생겼다. 방문자센터에서 와우산과 명상의 숲, 해안면사무소를 거쳐 방문자센터로 되돌아오는 ‘평화의 숲길’ 14㎞는 벙커와 교통호 등 군사시설물을 보며 분단의 현실을 실감하는 길. 금강산으로 가기 위해 쉬어 가던 서희령 아래에는 제4땅굴이 입을 벌리고 있다.
방문자센터에서 오유저수지와 선사유적지 등을 둘러보는 ‘오유밭길’ 14.6㎞는 해안분지의 농촌풍경을 감상하는 길. 만대리를 중심으로 해안분지의 남쪽 기슭을 걷는 ‘만대벌판길’ 17.2㎞는 가칠봉 을지전망대를 비롯해 경관이 아름다운 북쪽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오는 코스로, 불 밝힌 비무장지대(DMZ)의 야경도 환상적이다.
어머니의 품처럼 아늑한 해안분지에 들어서면 제4땅굴과 을지전망대로 가는 길이 나온다. 을지전망대 아래에 위치한 제4땅굴은 1990년 군사분계선과 1.2㎞ 떨어진 지점에서 발견된 북한의 남침용 땅굴. 전동차를 타고 암흑의 공간에 들어서자 ‘오직 혁명을 위하여’ 등 북한군이 암벽에 써놓은 구호가 선명하다.
은행나무 가로수가 노랗게 물든 해안면 소재지에서 해발 1049m의 을지전망대로 오르는 군사도로는 길섶의 ‘지뢰’ 표지판에도 불구하고 평화롭기 그지없다. 을지전망대는 남쪽의 해안분지와 북쪽의 산을 한곳에서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 전망창 너머로 늘 운해가 낀다는 운봉과 북한 여군들이 목욕을 한다는 선녀폭포, 그리고 금강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7개 봉우리로 이루어진 가칠봉은 금강산 1만2000봉을 완성하는 남쪽의 마지막 봉우리. 한국전쟁 때 이 고지를 확보하기 위해 40일 동안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가칠봉 앞에 위치한 3개의 고지를 김일성고지, 모택동고지, 스탈린고지로 명명해 병사들에게 적개심을 고취시켜 치열한 혈전을 벌였고, 다행히 국군이 가칠봉을 점령하면서 휴전선이 38선 북쪽으로 획정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최근 ‘노크 귀순’ 등으로 휴전선을 둘러싼 남북 긴장이 가을 하늘처럼 팽팽하지만 울긋불긋 물든 남북의 산하는 마냥 평화로워 어머니의 치마폭에 안긴 듯 평온한 해안분지는 한 송이 장미꽃처럼 붉게 타올라 깊어가는 가을을 노래한다.
양구=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