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서적 가을 특집] 허전한 자리에 영성을… 한 권 뽑아 보세요

입력 2012-10-17 18:45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 눈이 쌓이고/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중략)/자정 넘으면/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곽재구의 ‘사평역(沙平驛)에서’)

모두에게는 밤늦게 뒤척이게 만드는 그리운 순간들이 있다. 그리웠던 순간과 상반된 현재 속에서 괴로워하는 것이 인생일 게다. 시인은 따뜻했던 지난 순간들과 외롭고 힘겨운 현재를 날카롭게 대비시킨다. 그리움의 상징인 한 줌의 톱밥을 던지는 것은 비단 시의 화자만이 아니다. 우리 모두 도시의 불빛 속에 그리움이라는 한 줌의 톱밥을 던지고 있다.

가을이다. 가슴이 저며지는 계절이다. 여름날 강렬한 태양의 열기가 아직 남아 있지만 설원을 생각하고 준비해야 하는 시절이다. 인생은 어김이 없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생로병사가 이리도 정확하게 반복이 되는가. 인생의 위대한 설계자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가을, 우리는 무언가를 그리워한다. 우리를 끊임없이 밀고 가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로 하여금 열심히 살도록 충동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그리움이다. 헤르만 헤세는 ‘그리움이 나를 밀고 간다’는 책에서 그리움이야말로 낯선 곳을 방랑하는 자신을 살아 숨쉬도록 만드는 궁극의 실재라고 표현했다. 그의 말처럼 우리 모두는 그리움을 간직하고 산다.

지난 추석에도 변함없이 귀향과 귀성 전쟁이 벌어졌다. 왜 고생하며 그곳에 가는가. 거기는 그리움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리움은 합리성과 효율성을 초월하는 개념이다. 첨단으로 치닫는 하이테크 시대, SNS의 위력이 도처에서 발휘되는 시대에도 그리움은 작용한다.

이 가을에 아름다운 그리움의 편지를 쓰시기 바란다. 인생 설원을 쓸쓸히 달리는 서로에게 한 줌의 톱밥을 던져주기 바란다. 부한들, 빈한들, 우리네 삶은 외롭고 힘겹다. 누구나 그리운 순간들을 호명하며 한 줌의 눈물을 던지고 있다. 신앙생활이란 무엇인가. 술 취한 듯 맹목적으로 흘러가는 삶 속에서 울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그리움을 나누는 것이 아닐까.

이 가을에 또한 그리움의 독서를 하면 좋겠다. 책 속에서 그리움을 찾아보자. 하나님을 향한 그리움, 사람을 향한 그리움의 이야기가 기독 서적들 속에는 담겨 있다. 그리움의 독서를 하면서 메말라 버린 우리 삶에 그리움이란 단어를 되찾아보자. 서점에 직접 나가 책 향내 맡으면서 한 권의 책을 골라보자. 그리움의 독서는 아무래도 종이와 활자의 향기를 맡으면서 할 때 제 맛이 난다. 전자책의 시대에도 종이책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종이책 자체가 그리움의 상징이기에. 거기에는 무엇으로도 빼앗을 수 없는 노스탤지어(향수)가 있다. 이 가을, 그리움의 독서를 하자.

이태형 선임기자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