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의 바둑이야기] 조훈현 외길인생 50년
입력 2012-10-17 18:13
전신(戰神) 바둑황제 조훈현(59) 9단이 지난 14일 입단 50주년을 맞았다. 1953년 전남 영암에서 태어나 1962년 만 9세의 나이로 세계 최연소 프로(이창호 9단은 11세 입단)가 된 조훈현의 기록은 50년이 지난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다.
당시 한국 바둑계의 기반이 잘 다져지지 않아 조훈현은 프로가 된 이듬해에 세고에 겐사쿠 9단의 내제자로 일본에 건너갔다. 그리고 1966년에 일본기원 입단대회를 통해 다시 일본 프로가 돼 일본에서 활동했다. 하지만 한창 주가를 올리던 그는 1972년 군복무 문제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때부터 한국 바둑계는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한다.
1974년 당시 1인자였던 김인 7단을 꺾고 최고위전 우승을 차지하면서 ‘조훈현 천하’가 시작됐다. 그리고 1989년 한국 바둑계의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아마 지금까지도 한국 바둑계의 가장 가슴 뭉클한 사건을 뽑으라면 단연 제1회 응씨배일 것이다. 조훈현은 참가하는 데 의의가 있다 할 정도로 무시 받던 한국에 첫 세계대회 우승을 안겨줬다. 당시 네웨이핑 9단을 상대로 3대 2 대역전승을 펼치며 우승컵을 들어 올렸던 조훈현은 그 공로로 은관문화훈장을 받았고, 바둑계 사상 첫 카퍼레이드로 국민들의 환호를 받았다.
그 후 1970∼80년대가 ‘조서(조훈현·서봉수) 시대’로 이어지며 조훈현은 세계대회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는 것은 물론 국내 대회 147회 우승, 세계 대회 11회 우승을 차지하며 통산 158회 우승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1980년, 82년, 86년 세 차례 국내 대회 전관왕의 위엄을 보여줬다. 조훈현은 최다대국 2667국, 최다승 1875승, 최다타이틀 158회, 단일기전 최대연패(패왕전 16연패 달성), 한국 최초의 9단(1982년) 등 ‘걸어 다니는 기네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제 내년에 이순(耳順)이 되는 조훈현은 지금도 시합에 출전하고 있다. 최근 최고의 성적을 내고 있는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기사들과 대등한 승부를 펼치며 현재 랭킹 58위를 차지하고 있다. “저도 때리면 아프죠. 지면 아픕니다. 그래도 생각해보면 제가 그만큼 성장했다는 것이 위안이 됐죠.”
조훈현은 한때 제자 이창호에게 모든 타이틀을 빼앗기고 무너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바둑 외길인생을 걸어온 그는 한국 바둑을 세계 최강국으로 이끌고 이창호 이세돌 박정환 9단 등 최고 기사들을 조련해 한국 바둑계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산증인으로 불린다.
시대가 바뀌고 나이가 들어 약해지는 것은 피해 갈 수 없지만, 거의 평생을 오롯이 승부 안에서 살아온 그는 진정 이 시대의 ‘불멸의 승부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프로 2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