藥 오남용 방지 제도 ‘무용지물’… 의·약사들, 경고 시스템 무시하고 처방·조제 ‘심각’

입력 2012-10-16 19:15

50대 남성 A씨는 지난해 29개 병·의원을 돌며 향정신성의약품 졸피뎀(수면유도제)을 59회 처방받은 뒤 33개 약국에서 조제를 시도했다. 중독자의 ‘의료쇼핑’이 의심되는 사례였다. 이 과정에서 병원과 약국 컴퓨터에는 A씨의 의약품 오·남용 위험을 알리는 경고 메시지가 51차례나 떴다. 하지만 의사와 약사의 절반은 이를 무시했다. A씨는 졸피뎀을 26차례 손에 넣는 데 성공했다.

전문의약품의 오·남용을 막는 최후의 안전판인 ‘의약품처방조제지원서비스’(DUR)는 함께 복용할 수 없는 위험약물이 처방 혹은 조제될 때 의료기관 컴퓨터에 경고 메시지가 뜨는 시스템이다. 2010년 12월에 도입된 뒤 의료기관과 약국의 참여율이 98%에 이를 만큼 성공적인 정책으로 주목받아 왔다.

하지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자료를 분석한 실상은 정반대였다. 새누리당 김현숙 의원은 DUR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2010년 12월부터 지난 6월까지 의·약사에 의해 금기 약이 처방 조제된 사례가 무려 6만8586건인 것으로 조사됐다고 16일 밝혔다. 함께 복용할 수 없는 약물(병용금기)이 사용된 경우가 2만6700여건, 연령대에 맞지 않는 약(연령금기)을 쓴 예가 3만1600여건, 임부에게 금지된 약(임부금기)을 준 예는 1만200여건이었다.

그 과정에서 드러난 의료인의 비윤리적 행태도 심각했다. 의료인이 DUR 경고창을 무시할 때는 ‘의학적 사유’를 기재해야 하지만 상당수 기관은 이를 무시했다. 새누리당 신경림 의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만 1만6000여곳의 의료기관 및 약국이 부적절한 사유를 대고 금기 약을 처방하는 등 DUR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다가 적발된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4500여곳의 의료기관은 DUR 무시 사유에 대해 ‘ㅎㅎ’ ‘ZZZ’ ‘AAA’ 등 의미를 알 수 없는 문구를 적어놓거나 연령 금기약 처방 이유가 ‘여행’이라고 기재하는 등 제도 자체를 희화화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현재 DUR은 권고사항일 뿐 의무가 아니어서 의료기관이나 약국이 어기더라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며 “DUR을 의무화한 개정 약사법이 국회에 계류 중인 만큼 법이 통과된 후 적극적으로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