쇳물에 두명 희생됐는데… 책임자는 영장 기각
입력 2012-10-17 00:32
백일짜리 딸과 노부모를 위해 공장으로 향했던 20대 청년들의 희망은 쇳물과 함께 바닥으로 녹아내렸다. 1200도 고열을 내뿜는 쇳물은 그들의 몸을 집어삼켰고 경찰은 DNA 감식을 통해 겨우 시신을 수습할 수 있었다.
지난달 10일 전북 정읍의 주물 제조업체 캐스코에서 심야 근무를 하던 근로자 박모(27)씨와 허모(28)씨가 변을 당했다. 두 사람은 ‘래들’이라는 용광로 쇳물 운반 기계가 뒤집히면서 목숨을 잃었다. 고인이 된 박씨는 이제 막 100일이 지난 딸이 있었고, 허씨는 부모님을 모시는 독자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이 뒤집어쓴 쇳물은 워낙 고열이라 사고 현장을 수습하기 위해 접근했던 소방대원들조차 한동안 접근이 어려웠다고 한다.
캐스코는 엔진부품 등을 만드는 LS그룹 계열사로 2006년 말 정읍에 문을 열었다. 지역 청년들은 괜찮은 일자리가 생겼다며 기뻐했지만 환호는 오래가지 않았다.
16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이 업체는 2007년 이후 2010년까지 매년 2~3건씩 산업재해가 끊이지 않았다. 새누리당 주영순 의원에 따르면 노동부 전주지청은 지난해 2월 캐스코를 포함한 산재 다발 20개 사업체를 선정해 자체적인 재해예방 추진계획을 수립하도록 했지만 사망 사고를 피해가지 못했다. 모락모락 대형 사고의 연기를 피워내던 이 업체는 결국 멀쩡한 두 청년을 쇳물 속으로 떠나보냈다.
노동부는 “신규 설비를 설치하면서 안전성 평가를 거쳐 위험요소를 제거해야 했음에도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작업을 강행했다”며 이 회사 안전보건관리책임자 K씨에 대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사고 이후 노동부는 이 업체에 특별감독을 실시해 표준 안전 난간 미설치 등 산업안전법 위반 행위 22건을 적발했다.
그러나 전주지법 정읍지원은 15일 K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유족과 합의가 됐고 성실히 조사에 임했기 때문에 도주 및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재판을 해봤자 실형이 나오지 않을 것이 뻔하니 구속을 시키지 않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노동계와 일부 야당 의원들은 “‘7년 이하 1억원 미만의 벌금’으로 정해진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의 처벌 하한선을 높여야 한다”며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