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작금지’ 표지판 무색… 배추·고추 등 버젓이 재배
입력 2012-10-16 18:47
4대강 주변 불법경작 여전… 충주·여주 가보니
16일 찾은 충북 충주시 용탄면 1071번지. 옆으로 남한강이 흐르는 하천 부지 안 약 250㎡ 넓이의 밭에는 빨갛게 익은 고추와 알맞게 자란 배추가 수확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추밭 중앙에는 ‘이곳은 광역 상수도가 묻혀 있는 곳으로 무단점용(경작)을 금지한다’는 내용의 표지판이 서 있었다. 그러나 농기구 등이 들어 있는 움막과 농작물들은 이곳에서 경작이 버젓이 이뤄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같은 날 경기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 남한강 하천 부지 안에서는 김모(62)씨가 참깨를 수확하고 있었다. 불법경작 아니냐는 질문에 김씨는 “구청직원들이 이곳에서 농사지으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면서도 “예전부터 농사지어 왔던 곳이라 쉽게 떠날 수 없다. 이것들이 강을 오염시키면 얼마나 시킨다고…”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왕대리 남한강변 일대에는 김씨의 밭 외에도 주인을 알 수 없는 밭들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정부가 환경보존을 이유로 2008년 하천법을 개정, 하천부지 내 경작을 금지하고 있지만 여전히 4대강 곳곳에서 불법경작이 이뤄지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최봉홍 의원이 국토부와 4대강살리기추진본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4대강 유역에서 불법경작이 적발된 곳은 총 59곳이었다. 영산강이 25곳으로 가장 많았고 금강(12곳) 한강(11곳) 낙동강(11곳) 순이었다. 국토부는 각 지자체에 조치를 요청해 현재 한강 유역은 11곳 가운데 6곳이 원상 복구됐고, 영산강 유역은 5곳은 원상 복구했고, 20곳은 경작금지 표지판을 설치했다고 밝혔다. 금강 유역은 6곳 원상 복구, 4곳 경작금지 표지판 설치 등의 조치를 했다. 낙동강 유역은 1곳만 원상 복구됐다.
서울지방국토관리청 임광수 하천국장은 “친환경농법 등 어떤 형태로 재배를 하든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경작은 하천을 오염시킬 수밖에 없다”며 “과거엔 하천오염보다 식량난이 더욱 시급했지만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져 하천 내 국공유지에서 개인의 경작을 금지한 것”이라 설명했다.
그러나 현지에서 만난 농민들은 정부의 단속에도 경작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입을 모았다. 따라서 어차피 단속이 불가능하다면 하천 부지를 친환경적 경작지로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농협경제연구소 황명철 연구실장은 “우리나라와 축산여건이 비슷한 일본은 하천변 1만588㏊에 옥수수와 파, 청보리 등 조사료 재배를 허용해 사료 확보와 경관 보전 등 다원적 기능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충남 부여, 전남 나주, 경남 밀양 등 지역 축협은 지자체와 협약을 맺고 4대강 주변 하천부지 640㏊에 옥수수, 수단그라스 등 조사료 재배를 추진했으나 국토부의 불허로 무산됐다.
황 실장은 “현재 국내 조사료 자급률은 82.9%인데 하천부지 내 경작을 허용하면 약 1800억원의 경제효과를 볼 수 있다”며 “수입 조사료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어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공공단체에 한해 재배를 허용하면 축산농가의 사료비 절감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