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정원교] 후더핑을 만난 시진핑
입력 2012-10-16 18:49
중국중앙(CC)TV는 지난 8월 하순부터 뉴스 시간에 ‘숫자로 본 10년’이란 시리즈를 방영하고 있다. 2002년부터 2011년까지 ‘후·원(胡錦濤·溫家寶) 체제’ 아래서 중국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되짚어보는 프로그램이다.
예를 들면 도로가 매일 641㎞꼴로 늘었다거나 무상 의무교육이 전면적으로 실시됐다는 식이다. CCTV 홈페이지는 이 코너를 소개하면서 중국이 지난 10년 동안 달성한 ‘경제·사회적인 성취’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 기간에 ‘정치 발전’을 이뤘다고 말하는 매체나 전문가는 드물다. 오히려 중국 공산당 중앙당교 기관지인 학습시보(學習時報)의 부편집장 덩위원(鄧聿文)은 지난달 초 외부에 발표한 글에서 ‘후·원의 정치 유산’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베이징대 법학과 교수 허웨이팡(賀衛方)은 후진타오를 정점으로 한 4세대 지도부는 ‘민주주의’와 ‘사회정의’에 대해 귀를 막고 있었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에 대해 4세대 지도부는 중국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성장하고 교육받았기 때문에 본질적인 변화를 추구할 식견이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즉 대약진운동 당시 굶주림과 문화대혁명의 대혼란을 엄청난 고통 속에 보낸 그들이 법치나 인권이라는 개념을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모옌(莫言)이 쓴 산문 ‘흘상흉악(吃相凶惡)’에는 대약진운동 때 참상이 잘 그려져 있다. “1960년 봄은 인류역사상 참으로 어두운 봄이 아니었나 싶다. 마을에서는 거의 매일 굶어죽는 사람이 나왔다. 벌판에 구덩이를 파고 시체를 묻을라치면 눈이 시뻘건 개들이 옆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떠나고 나면 개들은 바로 구덩이를 파헤쳐 시체를 먹어치웠다.”
18차 당 대회(18대)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지금, 중국 지도부는 아직도 권력을 둘러싼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1989년 천안문(天安門) 사태 이후 정국이 가장 혼미스럽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를 두고 서방 언론들은 후진적인 정치 행태라고 지적하지만 그들은 정치적 안정을 위한 중국 특유의 정치 체제라고 말한다. 1978년 개혁·개방 이래 지금의 경제적 번영을 이룬 것도 공산당 일당 지배에 의한 정국 안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중앙집중적인 정치 시스템의 함정은 이미 드러났다. 정보 교류가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초래해 체제를 근본적으로 취약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보시라이 스캔들’은 좋은 예다. 보시라이가 1990년대 초 다롄(大連)시 시장으로 있을 때부터 숱한 비리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사람들은 그런데도 그가 지금까지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데 대해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정치적 불확실성과 언론자유의 부재는 중국의 미래를 낙관하는 사람들조차 심각하게 우려하는 부분이다. 새로 출범할 시진핑 체제는 과연 이러한 과제를 치유할 개혁방안을 내놓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그가 숱한 정치적 풍파를 헤쳐온 탓에 안정 위주의 국정 운영을 할지 모른다는 관측이 고개를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진핑이 최근 후야오방(胡耀邦) 전 총서기의 아들로 일관되게 개혁을 주장해온 후더핑(胡德平)을 만났다는 사실은 긍정적인 신호로 다가온다.
베이징=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