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한상인] 체제가 존속하려면
입력 2012-10-16 18:49
사람들이 정글의 세계에서 살지 않고, 사회를 구성하고 사회제도의 규제를 받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생명을 보호받기 위한 것이다. 국민이 국가에 세금을 내고 국민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도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국가가 지켜주기 때문이다. 만일 국가가 그 기본적 일을 하지 않거나 못한다면 국민은 국가를 새롭게 변화시킬 수밖에 없다.
최근 강력범죄와 성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연일 성폭행과 살인, 자살과 같은 중대한 사회적 사건들이 보도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의하면 2010년 한 해 동안 1251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하루 평균 3.4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한 셈이다.
그뿐 아니라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고 자부심을 갖기에는 너무도 부끄러운 성범죄가 주거지역과 학교, 가까운 도심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 중대 범죄에 대한 처벌이 너무 가벼워서 피해자의 가족이나 일반 국민들의 마음속에 불안과 분노가 극에 달하고 있다.
강력 범죄자 엄하게 처벌해야
지난 4월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풀려난 성폭행 피의자가 피해 여성을 무참하게 살해했다. 또 살인범에 대한 형량도 징역 5년, 10년형에 그치는 경우가 있어서 인명 경시 풍조가 크게 우려된다. 얼마 전에는 두차례 살인죄를 범한 사형수가 자신의 사건을 소재로 쓴 책을 출판하려다가 제지당한 사실이 보도됐다. 그는 참회의 글이 아니라 자신의 행위를 변명하고 정당화하는 차원에서 소설을 쓴 것으로 보인다.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8년째 1위를 하고 있는 것도 큰 문제다. 개인적인 자살도 큰일이지만 사회적 억압에 의한 자살은 타살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정말 이런 사회는 무엇인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것이다.
치안이 없는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모든 것이 자유롭고 풍요로울지라도 치안 부재는 그 모든 것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범죄 안전망이 무너지면 사회적 약자와 경제적 빈곤층이 더욱 피해를 입는다. 더욱이 그들은 사회적 강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피해 사실에 대해 합당하게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억울함을 국가의 법과 제도가 아니면 어디에서 보상받을 수 있겠는가.
성경 사사기에는 극도의 성적 타락과 치안 부재의 사회상이 나온다. 한 레위인의 첩이 바람을 피우고 친정으로 돌아갔다. 레위인이 첩을 찾아가 집으로 데리고 오는 길에 베냐민 지파의 성읍에 머물게 됐다. 그곳의 불량배들이 레위인을 상관하려 하자 첩을 노리갯감으로 내주었다. 불량배들은 첩을 밤새도록 욕보였고 결국 첩은 죽고 말았다.
레위인은 원통함을 호소하기 위해 첩의 시체를 열두 토막 내어 이스라엘 지파에 보내 사건을 해결해 달라고 했다. 이스라엘 지파의 지도자들은 불량배들을 처벌할 수 있도록 인도해 달라고 베냐민 지파에 요구했다. 그러나 베냐민 지파가 거절하자 전쟁이 일어나 베냐민 지파가 멸절할 지경에 이르렀다.
치안부재는 새 체제를 요구한다
이런 총체적인 비극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사사기 21장 25절에 결론적 해설이 나와 있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사시대는 사사가 다스리고 왕이 없던 때였다. 그 시대의 성적 부도덕과 치안 부재에서 비롯된 극도의 악행에 대한 해결책은 바로 사회제도의 대혁신이었다. 그 결과 이스라엘에 왕정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민은 범죄에 대한 합당한 징벌을 통해 국가와 사회에 안전과 평화가 보장되기를 원한다. 국가의 공권력이 사회 안정과 질서를 유지하고 보전하지 못한다면 그 정권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치안 부재는 정권교체의 중대 사유이며, 새로운 체제를 강력하게 요구하는 태풍의 눈이다.
한상인 한세대 교수 구약학·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