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누크 前 캄보디아 국왕 사망… 두차례 즉위·망명·내전 파란만장한 삶

입력 2012-10-15 18:51

두 차례 국왕 즉위와 망명, 20년이 넘는 내전 등 격동의 세월을 겪었던 노로돔 시아누크 전 캄보디아 국왕이 15일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캄보디아 정부 키에우 칸하리트 대변인은 시아누크 전 국왕이 치료차 머물던 중국 베이징에서 89세를 일기로 숨졌다고 밝혔다. 시아누크는 수년간 암과 당뇨병, 고혈압 등으로 중국에서 수차례 치료받아 왔다고 AP통신 등은 보도했다. 시소와스 토미코 왕자는 시아누크 전 국왕이 심장마비를 일으켰다고 말했다.

시아누크는 캄보디아 정치사의 핵심 인물이다. 1941∼1955년, 1993∼2004년 두 차례 국왕을 지냈고 독립, 베트남전쟁, 크메르루주 정권의 학살 등 격동의 시기를 거치며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

18세 나이로 국왕에 즉위한 그는 1953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캄보디아 독립을 이끌어 국민들로부터 ‘독립의 아버지’로 불린다. 2년 뒤 왕위를 아버지에게 넘긴 뒤에는 총리와 국가원수를 지냈다. 그는 1970년 미국이 지원한 론 놀의 쿠데타로 실각, 중국과 북한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크메르루주 집권기 자식 5명을 잃었고, 자신도 처형당할 뻔했지만 중국의 개입으로 목숨을 건졌다.

그는 특히 북한 김일성 주석과 의형제를 맺을 정도로 친밀했다. 김 주석은 1970년 실각 이후 평양을 찾은 그를 국왕으로 예우하면서 주석궁을 본뜬 큰 저택을 지어줬다. 두 번째 망명길에 올랐을 때도 환대했다. 1991년 캄보디아 귀국 길에는 북한 경호원 40명이 수행했다. 시아누크는 김 주석 생일에 노래를 지어줬고, 수도 프놈펜에 김일성 거리도 만들었다. 왕궁 경비도 북한군 출신 용병에게 맡겼을 정도다. 시아누크는 1993년 왕위에 복귀했지만 2004년 은퇴 소동 끝에 아들에게 양위하고 물러났다. 이 때문에 국민들 사이에서 ‘변덕쟁이 전하’라고도 불렸다고 교도통신은 전했다.

남혁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