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의 시편] 최적의 온도에서 최고의 나를 만들라
입력 2012-10-15 18:06
가을 단풍이 곱다. 공기가 차가워지면 질수록 단풍은 더 붉게 물든다. 사람들은 그 단풍나무 아래를 거닐며 가을의 서늘한 온도를 느낀다. 온도 변화는 만물을 변화시킨다. ‘1250℃, 최고의 나를 만나라’는 책을 보면 온도에 대한 흥미롭고 의미 있는 이야기가 있다. 도공이 도자기를 만들 때 훌륭한 도자기가 아닌 평범한 질그릇을 만들 때는 가마의 온도가 일반적으로 800℃ 내외라고 한다. 하지만 최고의 고가를 자랑하는 고려청자, 이조백자 같은 작품을 만들 때의 최적의 온도는 1250℃라는 것이다. 그렇게 뜨거워지면 흙의 밀도는 놀라울 만큼 강하고 단단해진다. 마침내 유리 같은 빛깔을 내고 유리처럼 매끈매끈한 청자나 백자가 된다는 것이다.
어찌 도자기뿐이겠는가. 우리의 삶도 800℃의 편안한 환경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거나 안주하면 볼품없는 질그릇이 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내 속에 잠재된 최고의 나를 발견할 수 없고 최고의 나를 만들 수도 없다. 그러나 1250℃의 뜨겁고 힘겨운 환경인 것 같지만, 거기서 참고 견디며 빚어지는 삶을 살 때 값비싼 고려청자나 이조백자의 도자기처럼 최고의 나가 되고 최고의 인생을 살 수 있다. 그렇다. 최적의 온도에서 최고의 나를 만들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로 우리를 최고의 걸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1250℃의 환경을 조성할 때가 많다. 그런데 우리는 상황과 형편이 너무 힘들다고 좌절한다. 왜 나만 이런 고난을 겪느냐고 원망하며 푸념할 때도 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은 마치 1000℃, 1250℃를 넘어가는 가마처럼 활활 타오른다. 고난과 시련의 불길이 너무 뜨거워 자포자기하고 절망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고난의 온도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최적의 온도에서 연단하여 최고의 나를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손길을 기억해야 한다. 인생은 한 번이다. 연습과 리허설이 없다.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이 소중한 인생을 질그릇처럼 살고 싶은가, 아니면 청자 백자 같은 걸작품으로 살고 싶은가. 최고의 걸작품, 최고의 나로 빚어지기 위해서는 1250℃의 온도를 견뎌야 한다.
한국교계도 마찬가지다. 여기 저기 사건이 터지고 고난의 불이 타오른다. 화상을 입을 정도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1250℃의 그 뜨거운 온도를 견디고 이겨내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 앞에 볼품없는 질그릇이 아닌, 고려청자, 이조백자와 같은 명품 도자기로 빚어지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도공이다. 우리의 삶을 빚으시고, 한국교회라는 도자기를 굽는다. 볼품없는 질그릇이 되지 않기 위해 때로는 장작을 더 넣고 불을 더 활활 타오르게 하신다. 최적의 온도, 1250℃를 맞추기 위해서. 그대의 삶의 환경은 지금 몇 도인가. 한국교회가 처한 상황은 몇 도인가. 가마 속 화염이 너무 뜨겁고 힘들어도 참고 견디자. 최적의 온도에서 최고의 나를 만들어가는 그 붉은 꿈을 꾸면서.
<용인 새에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