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최병록] IT전담부처 신설 꼭 필요할까
입력 2012-10-15 18:29
연말 대선을 앞두고 우리 사회 일부에서는 정보기술(IT) 거버넌스 개편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2008년 이후 IT 경쟁력이 떨어졌으며, 따라서 IT 전담부처가 필요하고 규제와 진흥을 통합하여야 한다고 정치권을 비롯해 학계 및 옛 정보통신부 관계자들이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발전의 주역인 산업계의 의견은 전혀 도외시한 채 정치권 및 특정 이해집단 중심으로 정부조직 개편이 논의되고 있는 점이 매우 염려스럽다. 무엇보다 논쟁 핵심인 IT 전담부처 신설은 옛 정보통신부 및 관련기관들의 주장일 뿐, 현재는 물론이고 향후에도 산업계에는 하등의 실익이 없고 정책혼선만 초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 정부 들어 실시한 정부조직 개편 과정에서 법제 및 재원 정비 등의 후속조치 지연, 부처간 업무 조정 등으로 많은 혼란을 초래하였다. 부처간 업무조정에서 그동안 수 없이 많은 홍역을 치렀음에도, 다시 한번 이러한 늪에 빠져 시간을 허비하며 성장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다음으로 IT 전담부처 주장은 전 세계 주요국가의 정부조직과 IT융합 추세에도 배치된다. OECD국가 중 호주를 제외한 대부분이 IT 전담부처를 별도로 운영하지 않고, 산업을 통합하여 담당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2011년 산업간 융합을 확산하기 위해 세계 최초로 ‘산업융합촉진법’을 제정, 시행하였다. IT 전담부처가 운영된다면 자리를 잡아 가고 있는 IT융합 확산전략이 당초 계획대로 일관성 있게 차질 없이 추진된다고 보장할 수 있겠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가장 큰 문제는 IT 전담부처 신설 추진논리는 산업계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일부 학자 및 과거 나눠먹기식 정책 수혜자들의 의견일 뿐이라는 점이다. IT가 글로벌 경제위기 극복과 무역 1조 달러 달성을 주도하고, 10조원 이상의 IT융합 관련 신규 시장을 창출하는 등 실질적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SW 및 콘텐츠 등 IT 취약분야와 IT 중소기업의 수출이 증가하는 등 전자IT산업 체질도 크게 강화되었다. 2008년 이후 IT경쟁력이 떨어졌다고 하는데 특정지표 하나로 전체를 판단할 수 있는가.
분초를 다투는 IT업계의 속성을 감안할 때, 정부조직이 규제와 진흥을 함께 장악하여 산업을 발전시키겠다는 사고 자체가 이미 구시대적인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동안 IT업계의 땀과 피가 만들어낸 눈부신 성과들이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 때문에 평가절하되고, 소모적인 정쟁과 갈등으로 미래를 향한 대응이 늦추어져서는 안 된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대변되는 IT융합의 확산은 전통적인 산업간 경계를 허물며 기존의 상식을 뛰어 넘는 혁신과 새로운 시장 및 경쟁구도를 형성해 가고 있다. 현 정부는 IT융합 관련 부처간 갈등 완화를 위해 대통령실을 중심으로 관계 부처 합동의 산업 정책방향 및 발전전략 수립 등 정책 협조를 강화해 왔다. 이렇게 어렵게 가꾸어 온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IT산업 육성조직의 틀을 깨고 궤변적인 논리에 근거한 소모적인 새 판 짜기 논쟁에 또다시 함몰될 것인가.
IT 전담부처 부활은 부처간 정책중복과 갈등을 재현하고 산업간 융합시대에 보다 심각한 혼선이 우려된다. 마치 IT 전담부처 조직신설이 혁신의 돌파구인 것처럼 주장하는데, 이보다는 부처간 유기적 협력을 통해 시의적절한 IT융합산업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혁신의 본질이 아니겠는가.
최병록 서원대학교 법경찰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