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김명호] 문민 국방장관이 필요한 이유

입력 2012-10-15 18:29


“국민에게는 신뢰를, 적에게는 공포를 주는 ‘지금 당장 싸워 이기는 강군’을 만듭시다. 조직과 업무체계, 의식 전반에 잠재해 있는 행정주의적 요소, 관료적인 풍토, 매너리즘을 과감하게 도려내야 합니다.”

어이없는 ‘똑 똑 똑, 노크 귀순’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2010년 12월 김관진 국방장관의 취임사였다. 바로 찾아본 이유는 당시 워싱턴 특파원으로 한·미 외교안보현안을 취재하면서, 그 내용이 내 머릿속에 깊이 각인돼 있었기 때문이다. ‘응징, 전투형 부대, 전사 중의 전사, 보여주기식 작전관행 뿌리뽑기’ 등의 표현은 듣기만 해도 시원했다. 북한의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에 대한 군 수뇌부의 대응 방식, 태도를 보고 이미 접어버렸던 군수뇌부에 대한 신뢰가 되살아나는 듯한 느낌까지 들었다.

군 내부, 견제·균형 논리 없어

“나는 하도 여러 번 속아서 군의 현장 지휘관 보고를 믿지 않는다. 다시 확인해보라고 했다. 이번에도 믿지 않았다. 사람 넘어온 건 확실하지만, 제대로 경계를 섰는지는 더 확인해봐야 했다.” 믿기 어렵겠지만, 군 상황을 즉각 보고받을 위치에 있는 외교안보 고위인사가 귀순 폭로 다음날(11일) 한 말이다. 그의 말대로 한심한 거짓말과 은폐가 속속 드러났다.

6일 만에 드러난 노크 귀순은 국정감사가 없었더라면 밝혀지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설명들도 많고, 귀순 경로도 불투명하다. 4년 전 ‘호출 귀순’ 사례까지 또 불거졌다. 중소기업에서도 용인되지 않을 이런 일들이 왜 일어날까. 군 상층부가 ‘끼리끼리’ 구성돼 있고 수준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리언 패네타 미 국방장관. 16년 동안 하원의원을 지낸 노련한 정치인 출신이다. 백악관 비서실장과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지냈다. 학군단으로 초급장교 2년 경험이 있다. 전임 로버트 게이츠 장관. CIA 국장과 대학 총장을 지낸 그는 공화당에서 민주당 정권으로 바뀌었음에도 전문적 지식과 경륜, 군에 대한 리더십을 평가받아 젊은 오바마가 사실상 유임을 ‘요청’했다.

지난 3월 퇴임한 미셸 풀루노이 전 국방부 정책차관은 자타가 공인하고, 언론이 인정한 펜타곤의 실세였다. 50대 초반 세 아이의 엄마로 관여하지 않은 외교안보정책이 없을 정도로 오바마로부터 신임을 받았다. 20여년 동안 국방부와 민간 싱크탱크를 오갔다. 이어 자리를 넘겨받은 제임스 밀러 정책차관은 스탠퍼드 대학을 졸업했다. 의원 보좌관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비서실장을 지냈으며,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에서 정보장교로 잠시 근무했던 적이 있다.

펜타곤에는 군인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장관이나 실질적으로 힘있는 자리에 민간 전문가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대부분 육사출신 장군들로 구성된 대한민국 국방부와 합참, 군내 고위직은 이미 견제와 균형의 논리가 사라졌을 것이다. 같은 학교 나와서 비슷한 보직을 주고받으며, 별 하나 달면 어느 자리, 두 개 달면 어느 자리, 이런 식으로 군 상층부가 형성됐으니 거짓 보고나 은폐가 쉬운 분위기다.

외부 시각 적극 반영돼야 마땅

그 문제점을 모두가 안다. 해결 방안은 외부 시각의 견제밖에 없다. 다음 대통령은 정권 첫 인사에서 과감한 결단을 해야 한다. 문민 국방장관 시대를 열어야 한다. 동시에 군에 대한 조사·감찰 기능에 민간 전문가가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아마도 격렬한 내부 반발에 부딪힐 것이다. ‘군의 특성을 무시하고, 군의 사기가 저하되고….’ 안 봐도 뻔한 ‘밥그릇 반발’이다. 조직적 왕따도 당할 것이다. 하지만 이 철벽구조를 깨뜨리지 않으면 군의 미래는 없다.

이 글을 마무리할 무렵 김 장관이 사과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취임사와 사과가 겹쳐지니, 공허함밖에 남지 않는다.

김명호 편집국 부국장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