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용현 (10) 순교자의 피 기억하신 하나님… 목사 꿈 이룬 자손
입력 2012-10-15 21:26
우리 선교회를 통해 목사의 꿈을 이룬 중국동포 J씨가 있다. 그와의 인연은 우리에게 중국 선교의 비전을 품게 했다.
그는 자신을 순교자의 직계자손이라고 소개했다. 1930년대 그의 증조부가 살던 중국 연해주의 마을에 어느 날 공산군이 들이닥쳐 주민들을 한곳에 불러 모았다고 한다. 공산군은 다짜고짜 목사를 찾았다. 목사와 장로는 나무 위에 올라가 몸을 숨겼다. 이들을 못 찾은 공산군은 교인들을 닦달하다가 “목사와 장로를 데려오면 당신들 중 절반은 살려주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목사는 나무에서 내려와 자백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무리 중의 한 사람이 손을 들고 “내가 목사요”라고 말했고 뒤이어 J씨의 증조부가 “내가 장로요”라며 앞으로 나왔다. 결국 두 사람은 총살당했다. 이들의 헌신으로 나머지 교인들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당시 7세였던 J씨는 이 광경을 끝까지 지켜봤다.
J씨는 중국의 한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복음전파를 향한 더 큰 열망이 있었던 그는 학문이 발전된 곳에서 신학공부를 더할 수 있기를 소망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나와 엔게디 합창단을 알게 됐다.
“하나님께서 순교자의 피를 기억하시고 보잘것없는 나를 하나님의 사역자로 불러주셨다”는 J씨의 고백을 들은 우리는 그의 공부를 물질적으로 돕기로 했다. 결국 J씨는 서울의 한 신학대에 편입해 학부과정을 순조롭게 마칠 수 있었다. 그는 현재 척박한 중국 땅에 교회를 세우고 ‘조선족 복음화’라는 목표에 모든 삶을 바치고 있다. 그의 기도가 우리 선교회를 통해 이뤄진 것이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J씨와 편지를 주고받던 중 “교회 버스를 마련하기 위해 기도해 달라”는 부탁이 마음에 걸렸다. 나는 엔게디 합창단을 통해 그 일이 이뤄지리라는 확신을 품고 기도했다.
주님께서는 엔게디 합창단의 음악회를 통해 헌금을 모으도록 하셨다. 버스 구입에 필요한 2000만원을 채우려면 적어도 1000명의 관객은 모여야 될 듯싶었다. 우리는 혼신의 힘을 다해 공연을 준비했고, 공연 당일 1200명에 달하는 성도들이 객석을 가득 채웠다. 놀라운 축복이었다. 이날 중국 교회에서도 성도들이 한자리에 모여 음악회 성공을 위해 통성기도를 했다고 한다. 공연을 통해 모금된 액수는 버스 구입비용과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하나님의 섬세하신 인도는 사람이 결코 예측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지난해 남광선교회를 통해 선교재단을 만들었다. 단순히 조직을 확장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는 선교단체로서 쓰임 받는 더 큰 목적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아무도 가지 못한 곳을 찾아가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은 누군가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지난해 초 선교재단 설립에 앞서 아들 정필이와 인경수 선교사를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모잠비크 3개국에 선교여행을 보냈다. 재단 설립을 위한 구상과 선교 비전 구축을 위한 여정이었다.
정필 일행은 비자야와디라는 도시에서 첫 집회를 가졌다. 교회에 200여명이 모였다. 신앙 간증을 듣던 중 어떤 사람은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고 어떤 이는 무릎을 꿇고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예정된 집회시간을 1시간 이상 넘기면서까지 찬양과 기도가 이어졌다.
그런데 정필 일행이 방문한 시기는 힌두교 축제가 열리던 때였다. 거리 곳곳에 힌두교 관련 장식이 가득했고 사람들은 춤을 추면서 저마다의 신을 칭송했다.
‘주여, 저들의 우상숭배가 하루빨리 무너져 이 땅에 주의 복음이 충만해질 수 있도록 역사하옵소서.’
정필은 이런 기도가 절로 나왔다. 일행은 하나님의 축복된 성회로 기필코 이 같은 우상축제를 무너뜨리리라 다짐했다.
정리=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