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초연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 주역 맡은 임태경 “황태자의 지독한 사랑 기대하세요”

입력 2012-10-14 18:26


뮤지컬 배우 임태경(39)이 ‘황태자 루돌프’로 돌아왔다. 오스트리아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는 비운의 황태자와 그의 연인의 슬픈 사랑이야기. 오스트리아 성공 후 일본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던 작품으로 국내에서는 11월 10일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홀에서 처음으로 관객과 만난다.

11일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임태경은 속삭이는 듯한 조용한 목소리로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갔다. 카페의 음악 소리에도 예민한 섬세한 성격이었다. 그는 루돌프 역에 대해 “국왕인 아버지와의 갈등, 사랑 없는 정략결혼 등으로 말로만 황태자일 뿐 늘 불안하고 갑갑한 상황에 처해있는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극중 ‘죽음을 넘어 사랑으로 하나되리’라는 대사가 있다. 예쁘기만 한 사랑은 아니고 지독한 사랑”이라고 말했다.

처음 캐스팅 제의를 받았을 때는 관심이 없었다. 결말이 너무 비극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비엔나 초연 영상을 보고 ‘나 이거 할래’ 했다. 극한의 슬픔이 주는 카타르시스,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마지막 장면이 너무 아름답고 강렬했다. 그러면서 “평소 ‘뮤지컬계의 황태자’라는 얘기를 많이 듣는데 정말 황태자 역을 맡으면 너무 뻔한 연기가 되는 거 아닌가 조심스럽기도 했다. 이왕 하게 된 거 무대에 서 있기만 해도 황태자 같은 분위기를 보여 줄 각오”라며 웃었다.

연습한 지 한달 여. 분위기는 기대 이상이다. 노래를 할 때마다 가슴이 덜컹덜컹한다. 브로드웨이 연출가인 로버트 요한슨과는 2008년 ‘햄릿’에서 함께 한 사이라 호흡이 잘 맞는다. 매일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연습 중이다.

황태자 역에는 안재욱과 박은태가 함께 캐스팅됐다. 그는 상대방에 대해 “안재욱씨는 연기 내공이 깊다보니 드라마가 좋을 것 같고, 박은태씨는 우리 셋 중에 가장 풋풋하고 음색이 매력적”이라고 평했다. 여주인공 마리 베체라 역에는 옥주현 김보경 최유하가 캐스팅됐다. 그는 “남녀 주인공 각 3명에 조연 2명이니 여러 조합이 가능하다. 관객 입장에서는 다양한 커플을 보는 게 흥미롭겠지만 섬세한 감정이 필요한 이야기인 만큼 아예 커플을 고정해 탄탄한 드라마를 보여주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크로스 오버 테너로 데뷔한 지 10년, 뮤지컬에 입문한 지는 7년째. 하지만 아직도 뮤지컬 쪽에서는 겉도는 느낌이다. “다른 동료 입장에선 제 첫 단추가 이방인으로 끼어진 것이다. 노래를 하다가 어느 날 낙하산처럼 주인공으로 시작한 것이라는 선입견이 깨지기는 어렵다. 죽을 때까지 그 무리에 끼지 못할 것 같다. 외롭고 쓸쓸하고 힘들긴 하다”고 말했다.

뮤지컬 배우로서 어려움도 토로했다. 음악회에서 2, 3곡 부르는 것과 뮤지컬 한다고 아무 것도 못하고 몇 달씩 연습하는 거랑 사실 개런티는 이게 더 적다. 돈과 몸 생각하면 안하는 게 맞다. 그는 “하지만 무대에서 배우들과 나누는 호흡이 너무 좋다. 실존인물이 되어서 주고받는 살아있는 팔딱거림이 매력적이다. 이번만 하고 그만해야지 하면서도 공연 끝나고 기립박수 받으면 한 번만 더하자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무대에서 내려오면 너무 외롭다. 공연 30분 후 방에 혼자 앉아있으면 극한의 정적과 외로움이 느껴진다”고 털어놓았다.

공연 후 배우들과 어울려 시간을 보내면 덜 외롭지 않을까. “다들 음주가무로 단합을 하는데 몸을 아끼니 그런 건 싫다. 무대에서 베스트를 보여주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답했다.

최근 ‘불후의 명곡’ ‘도전 1000곡’ 등 TV에 출연하면서 대중적 인지도가 급상승했다. “알아봐주는 건 감사한데 누군가가 늘 날 지켜보는 느낌이다. 도청당하고 CCTV(폐쇄회로TV)에 담겨진 느낌이랄까. 잔잔한 스트레스다. 루돌프도 이런 느낌이었겠지. 배역 속 미행당하는 황태자와 대한민국에서 공인으로 살아가는 배우는 많이 닮았다”고 말했다.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