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수장학회 정리, 정략적 접근 안 된다
입력 2012-10-14 19:43
현행법 따라 신중 처리하고 야당도 무작정 시비 말아야
정수장학회 최필립 이사장이 지난 8일 MBC 관계자들과 만나 장학회 자산 정리 문제 등을 논의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을 빚고 있다. 최 이사장은 이 자리에서 장학회가 보유하고 있는 MBC 지분 30%와 부산일보 지분 100%를 매각하고 매각대금 수천억원을 부산·경남 지역 복지 재원으로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고 한다.
정수장학회는 5·16 직후 군사정권이 강제헌납받은 고 김지태씨의 재산을 토대로 설립됐다. 부일장학회, 5·16장학회, 정수장학회로 이름을 바꾸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계속 관리해 왔고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도 1995년부터 2005년까지 이사장을 지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정수장학회 문제는 박 후보와 관련한 주요 정치 이슈가 돼 왔다.
정수장학회가 역사적 시빗거리인 자산을 정리하고 이를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다. 아무리 공익사업을 하는 재단이라 하더라도 국가권력이 강제로 빼앗은 재산을 모태로 하고 있다면 이를 되돌려주는 게 정정당당하다. 장학회가 언론사 지분을 갖고 있는 것도 언제든 정치적 시비에 휘말릴 소지를 안고 있다. 더구나 일간신문을 경영하는 법인이 지상파 방송사업자의 지분을 10% 이상 소유할 수 없도록 돼 있는 방송법 규정에도 위배된다니 언론사 지분을 처분하는 게 옳다.
하지만 정수장학회 재산의 사회 환원이 정략적으로 결정돼서는 안 된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한몫을 하기 위한” 차원이거나, 이번 대선의 핵심 쟁점 지역으로 떠오른 부산·경남 지역에 시혜를 베푸려는 목적에서 이뤄져서도 안 된다. 부산일보 지분 매각과 관련해 최 이사장이 “지금 노조 때문에 민주당인지 진보당인지 기관지로 돼 있으니 안되겠다는 것”이라는 등의 발언을 했다는 언론 보도가 맞는다면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다.
정수장학회 재산 정리는 동시에 현행법을 존중해 이뤄져야 한다. 김지태씨 유족 등이 낸 주식 반환 소송은 지난 2월 서울민사지법에서 강압성은 인정되지만 시효가 지나 반환 청구는 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내려진 이후 아직 2심에 계류 중이다. 부산일보 지분은 지난 3월 처분금지 결정을 받은 상태다. 이런 법적 문제들을 등한시했다가 또 다른 시빗거리를 만들면 안 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장학회를 중립적 인사들로 교체한 뒤 여론을 수렴해 차근차근 재산을 정리하는 게 올바른 해법이다. 박 후보는 이런 해법이 실행될 수 있도록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
야당도 정수장학회 문제를 대선 전략 차원에서만 활용해서는 안 된다. 문제 해결을 압박해 놓고 정작 해법이 나오자 박 후보를 지원하기 위한 정략이라고 공격한다면 비판을 위한 비판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정수장학회 정리에는 불가피하게 재원의 새로운 용처 결정이 따를 수밖에 없다. 정수장학회를 역사의 대로 위에 바로 세우는 게 목적이라면 사사건건 꼬투리를 잡기보다 대승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