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남도영] 과거사 정리, 개인 문제 아니다
입력 2012-10-14 19:45
지난 9월 5일자 본보 사회면에는 200자 원고지 3장 분량의 기사가 실렸다. 기사는 ‘서울중앙지법 민사33부(부장판사 이우재)는 간첩으로 몰려 15년간 수감생활을 한 정모(71)씨와 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고 4일 밝혔다’로 시작한다.
정씨는 47년 전인 1965년 10월 서해안 비무장지대 근처의 갯벌에서 조개를 캐다 북한군에게 나포됐다. 정씨는 22일간 북한에 억류됐다가 판문점을 통해 돌아왔고, 강화경찰서의 조사를 받고 석방됐다. 정씨의 시련은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1982년 시작됐다.
정씨는 이웃들과 함께 국가안전기획부에 끌려가 12일 동안 고문당했고, “나는 간첩”이라고 허위 자백했다. 당시 안기부는 ‘자백을 했는데, 신빙성이 좀 떨어진다’는 판단 아래 정씨와 이웃들을 석방했다. 1년 뒤 이번에는 안기부 인천분실이 정씨를 잡아갔다. 한 달 이상 감금한 상태에서 정씨는 다시 자백했다. 인천지방검찰청은 ‘자백’을 근거로 정씨를 기소했고, 정씨는 인천지방법원과 서울고등법원, 대법원 판결을 거쳐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정씨는 15년을 복역했고, 1998년 가석방됐다. 노무현 정부 산하에 설치됐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는 정씨 사건을 재조사했고, 2009년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정씨는 2010년 서울고법에서 열린 재심에서 무죄를 판결받았고, 2011년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정씨는 이를 근거로 국가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해 24억원 배상 판결을 얻어냈다.
최근 법원에서는 정씨 사례와 비슷한 재판들이 매주 1건 정도씩 열린다. 대부분 기자가 듣기에도 생소한 사건들이다. 정씨 판결 다음날인 9월 5일에는 민주민족청년동맹사건 배상 판결이, 그에 앞서 8월 27일에는 6·25 전쟁 당시 보도연맹 희생자 배상 판결이 내려졌다.
법원과 검찰에 따르면 과거 불법적인 수사와 억울한 옥살이 등으로 재심과 손해배상을 청구한 ‘과거사 피해사건’은 500여건에 달한다. 아직 정확한 통계는 없다. 이들 중 일부는 손해배상이 확정됐거나 소송이 진행 중이고, 일부는 재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특별한 사회적 관심을 끌지 못하는 가운데 법원에서 소리 없는 ‘과거사 정리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이 재판들은 2010년 활동이 종료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활동에 힘입은 바 크다. 위원회는 5년의 활동기간 동안 1만1172건의 과거 사건을 조사했고, 8450건에 대한 진실을 규명했다는 최종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들 사건 중 일부가 법원에 재판단을 요구하고 있고, 법원은 과거와 달리 이들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법원이 재판을 통해 지난날 국가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일부 판사들은 판결문을 통해 “그동안의 고통에 대해 법원을 대신해 머리 숙여 사죄 드린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쉬운 점은 이들의 과거사 정리가 개개인의 재판으로 최종 정리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와 국가의 이름으로 무고한 이들에게 고통을 줬다면 사회와 국가의 이름으로 이들을 위로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정씨와 수많은 다른 정씨들이 느껴야 했던 억울함과 고통이 수십년 뒤 내려진 무죄 결정과 손해배상만으로 해소되지는 않는다. 과거사 정리가 정치권의 대선 정략 혹은 논쟁으로만 다뤄지는 모습 자체가 우리 사회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다.
남도영 사회부 차장 dy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