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안주연] 도시락 찬가

입력 2012-10-14 19:45


슈퍼마켓에 다양한 디자인의 도시락 통이 줄지어 있다. 손을 뻗어 만지작거려 본다. 너무 예뻐서 사고 싶지만 나는 주로 직원식당에서 먹으니 도시락 쌀 일이 없다. 도시락을 싸줄 자녀도 없다. 아쉬워하면서 손을 떼는데 친구가 요즘 도시락이 유행이라고 한다. “초등학생도 급식을 한다던데, 누가 도시락을?”하고 의아해했다.

그런데 의외로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는 친구가 많다. 한 친구는 다이어트를 위해 야채를 가득 넣은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닌다. 다른 친구는 “직원식당도 없어 외부 식당을 전전하려니 귀찮아서”, 또 다른 친구는 “밥값이 너무 올라 돈 아끼려고”라며 이런저런 이유로 도시락을 싼다. 어찌하다 보니 도시락 동지도 생겨서 전날 메뉴를 상의해 저마다 자신 있는 별미를 싸와 나눠 먹는다. 사무실을 나서서 바람 쐬면서 소풍 기분을 내기도 한다.

최근에는 도시락의 인기로 도시락 메뉴만을 파는 식당도 생겼다. 관련 책도 등장했다. 도시락 이야기에 신이 난 친구들이 ‘내가 본 최고 도시락 반찬’을 꼽기 시작했다. 역시 계란 두른 소시지나 햄이 인기다. 장조림이 그 뒤를 따른다. 김밥을 꼽는 친구도 있는데, 그 때문에 소풍이 좋았다고 한다. 한 친구가 전복조림을 싸 오던 짝 이야기를 꺼내자 그 이상의 고급 반찬은 보지 못했다며 최고로 인정했다.

‘맛’에는 추억이 어리기 마련이지만 도시락만큼 추억이 가득 담긴 것이 있을까. 도시락은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10여년을 함께해 왔다. 쉬는 시간에 도시락을 해치우고 점심시간에는 매점에 달려가 빵을 사 먹던 것부터 각자 도시락을 한데 모아 비벼 먹던 일 등 친구와의 추억이 담겨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살 때는 도시락 통이 아이스박스였다. 너무 더워서 그랬던 것 같다. 공간도 넉넉해 점심 외에 초콜릿과 오렌지가 1개씩 들어 있었다. 지금 그 초콜릿은 우울할 때 하나씩 사 먹는 정신치료제다.

그래도 ‘도시락’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3교시 끝날 즈음 복도에 난 창문으로 교실을 기웃거리던 엄마 얼굴이다. 딸에게 따뜻한 밥을 먹이겠다고 새 밥을 지어 그 시간에 맞춰서 오곤 했다. 도시락은 싸 주는 사람과 먹는 사람, 두 사람이 먹는 것이라고 한다. 서로에 대한 정을 담고 그것을 느끼면서. 다들 전복조림을 최고의 반찬이라고 인정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엄마가 해 준 것이 세상 최고일 것이다.

안주연(웨스틴조선 호텔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