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김정욱] 롬니와 47%의 국민

입력 2012-10-14 18:58


지난 4일 미국 대선 공화당 후보 밋 롬니가 TV를 통해 자신의 ‘47% 발언’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그는 지난달 후원자들 앞에서 자신들을 희생자로 여기며 소득세를 내지도 않으면서 생존을 국가에 의존하는 47%의 국민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 지지자들이라고 발언한 것이 폭로되면서 곤욕을 겪어 왔다.

이렇듯 경제적 자립에 실패한 사람들을 모욕하는 발언의 이면에는 공화당이 자조의 정신을 중시하는 정당임을 강조하고, 민주당을 자립 의지가 부족한 사람들을 위한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 근면한 사람들로부터 세금을 거두는 데 혈안이 된 정당으로 비판하려는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롬니가 미국적 가치라고 믿는 자조는 오래된 연원을 가지고 있다. 일찍이 18세기 말 벤저민 프랭클린은 주어진 환경을 불평하기보다 근면과 검약을 실천해 개인의 경제적 자립을 추구하도록 권유했다. 이후 자조의 정신은 미국의 소생산자들 사이에서 지배적 가치로 부상했다. 이들은 생의 목적을 경제적 독립으로 설정하고 근면과 검약을 통해 이를 달성하려 했다.

그러나 이러한 덕목을 얼마나 실현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경제적 성패가 결정된다고 여겨지면서 개인의 경제적 곤경 또한 그 자신의 책임이라는 의식도 증대됐다. 실례로 19세기 중엽 자조의 정신을 설파한 성직자 헨리 워드 비처는 근면하고 검약한 자가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하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자조론은 독점기업이 경제를 장악하게 되는 1870년대에서 1920년대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자조론은 정경유착과 투기 같은 비도덕적인 축재 방식을 통해 소수에 부가 집중되는 사회에서 빈자들 자신에 그들의 경제적 실패의 책임을 전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경제적 자립이 최우선 가치가 될 때 이를 달성하는 수단은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되면서 비도덕적으로 만들어진 부에 정당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자조론이 약육강식의 경쟁과 적자생존을 인간사회의 법칙으로 여기는 사회진화론에 의해 합리화된 것이나 그 열렬한 신봉자들이 도둑 남작들로 불리게 될 부도덕한 독점 자본가들이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자조론은 대규모 주식, 부동산 투기로 촉발된 1930년대 공황 이후 그 영향력이 감소한다. 자조의 상징이었던 산업계와 금융계의 거물들이 공황의 장본인들로 여겨지고 경기변동의 불가피성과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이 인식되면서 공생의 가치를 중시하는 정부가 국민의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뉴딜정책이 등장했고 당시 만들어진 복지국가 체제는 지금도 골격이 유지되고 있다. 그럼에도 심화되는 부의 대물림 현상과 사회적 양극화가 보여주듯 미국은 더 이상 19세기의 자조론 주창자들이 믿었던, 오로지 개인의 노력만이 경제적 성패를 결정하는 기회의 땅이 아니다.

자조가 숭상하는 경제적 자립을 위한 노력의 소중함이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롬니가 자신이 실패자라 여기는 사람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는 한 대통령 후보로서의 자격은 의심받게 될 것이다.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근면과 검약을 실천하고 있으며 자주 자조론이 이들을 비하하며 소수의 성공한 사람들을 무비판적으로 옹호하는 신념이 되어 왔음을 인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대통령은 성공한 사람뿐 아니라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포함하는 모두의 지도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복지가 게으른 사람들을 만들어내서는 안 되지만 국가를 매개로 한 상호부조 제도가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의 재기를 도와주고 공생의 가치를 실현한다는 점에서 혐오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롬니가 간과한 역사적 교훈일 것이다.

김정욱 고려대 연구교수 역사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