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처음이 아닌 두 번째

입력 2012-10-14 17:27


요나 3장 1~3절

선지자 요나는 두 번째 기회와 인생을 산 사람입니다. 그는 ‘니느웨’라는 동네로 가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라는 명령을 어기고 반대쪽으로 가는 배를 타고 가버린 아주 불순종적이며 반항적인 사람입니다. 하지만 결국 바다에 던져지고 초대형 물고기가 삼켜버렸습니다. 이쯤 되면 그의 인생이 끝난 것이라 생각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그를 삼켰던 물고기가 그를 토해내고 그는 다시 인생이라는 무대로 돌아오게 됩니다. 다시 시작되는 그의 두 번째 인생을 요나서 3장 1절에서는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요나에게 두 번째 찾아와 두 번째 말씀을 하셨을까요. 두 번째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통해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첫째 ‘두 번째’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말합니다. 한 번 더 기회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잘못했다고 틀렸다고 실패했다고 모든 것을 빼앗아 가져가 버리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은혜라는 것은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베풀어지는 사랑”을 말합니다. 사랑은 반복해서 말하고 반복해서 수고하면서도 귀찮아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틀렸고 끝났다고 결론짓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다시 기회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넘어지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다시 일어나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피하지 말아라, 지금 서 있는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두 번째 은혜입니다.

둘째 ‘두 번째’는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두 번째 말씀하시는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의지’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의지란 한번 마음먹으면 반드시 그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열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단순한 주장이 아니라 ‘사랑의 고집’입니다. 이스라엘의 원수였고 타락한 도시였기 때문에 요나는 니느웨를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지역의 영혼들과 짐승들까지 아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화가 났고 심지어 하나님 앞에서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까지 말하면서 분노했습니다.

요나의 모습 안에 우리의 고민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내가 충돌하는 것입니다. 내가 싫어하는 것을 하나님도 싫어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나님도 좋아하시면 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나는 싫어하는데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반대로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은 싫어하십니다. 나는 저 사람이 싫은데 하나님은 사랑하라 하십니다. 나는 피하고 싶고 만나기조차 싫은데 하나님은 만나라고 하십니다. 그게 가족이거나 같은 교회 성도이거나 믿었던 사람일 때는 더 충격이 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이유는 내가 원하고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하면서 살기 위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사람을 살리고 영혼을 회복시키는 귀한 일을 하라고 이곳에 보내셨습니다.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나를 먼저 나를 살려 놓았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문제와 고통과 갈등, 상처가 아니라 그 상황 속에서 하나님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묵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때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회복과 치유를 경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의 깊은 은혜를 받아 누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부산 금성동교회 정지욱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