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용현 (9) 삶을 바꾼 성지순례… 2000년전의 주님 만난듯

입력 2012-10-14 17:28


내 신앙생활의 가장 큰 전환점이 된 것은 바로 성지순례다. 선교의 꿈을 품게 된 이후부터 성경 속에 등장하는 고대 근동의 역사에 큰 관심을 갖게 됐다. 성지순례를 관광 차원으로 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성지순례의 본질은 성경의 역사를 보다 자세히 알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목사님과 교수님들을 모시고 여러 차례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2006년 처음 성지순례를 떠났을 때 이스라엘 땅을 밟던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곳은 하나님이 직접 찾아오셔서 말씀하시던 계시의 현장이었다. 성경 내용만으로는 온전히 알기 어려운 현지의 풍토와 문화를 온몸으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터키 등 여러 지역을 돌면서 힘든 여건 속에서 선교에 헌신하는 분들도 여러 명 만날 수 있었다. 이슬람 국가로 기독교인의 비율이 0.3%에 불과한 터키에서 선교란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다. 이들 선교사를 보면서 ‘저들이 나를 대신해 힘들게 복음을 전파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인이 된 선교사 K씨는 예전에 한국에서 꽤나 잘나가던 사업가였다가 아내의 병 때문에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다. 뇌종양으로 죽을 고비에 이른 아내를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으나 별 소용이 없었고, 길어야 5개월을 넘기지 못할 것이란 선고만 받았다. 그는 아내의 부탁으로 난생 처음 기도원을 찾았다.

“하나님, 당신이 정말 살아 계신다면 내 아내를 살려주세요! 살려만 주신다면 제 남은 인생을 당신을 위해 바치겠습니다.”

그는 두 달이 지나도록 기도원을 나오지 않았고 결국 하나님께서 치유의 기적을 베푸셨다. 아내 몸속의 종양이 말끔히 사라진 것이다. 이후 K씨는 약속대로 사업을 접고 주님의 일에 헌신하기로 작정했다. 교회를 통해 터키 이스탄불로 파송됐고 그곳에서 5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하지만 어느 날 그의 하나뿐인 아들이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숨지고 말았다.

그는 “제가 주님의 일에 평생 헌신하려 했는데 그 대가가 고작 이런 것인가요”라며 한동안 하나님을 원망했다. 그러던 중 새벽기도 가운데 성령님의 말씀이 들려왔다.

“생명이 내게 있다. 네 아내에게 생명을 돌려준 것도, 네 아들을 데려간 것도 내 은혜다.”

정신을 차린 그는 이스탄불에서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며 복음을 전하는 일에 매진했다. 아들을 데려간 대신 이스탄불의 수많은 자녀들을 품도록 명하신 주님의 뜻을 깨닫게 된 것이다.

나는 성지순례에서 K씨와 같은 선교사들을 만나고 돌아와 선교사 후원회를 만들었다. 체계적인 선교 지원을 위해 매달 일정 금액을 후원하기 시작했다.

우리 선교회에는 엔게디 합창단이 있다. 합창단이라고 해서 잘 갖춰진 엄숙한 자리에만 가지 않았다. 무의탁 노인 공동체, 양로원, 병원 등 어렵고 소외된 이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 찬양을 들려줬다.

엔게디 합창단은 한 선교사의 주선으로 터키의 안디옥교회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터키에서 선교와 관련된 공연을 하려면 엄격한 허가 절차를 거쳐야 했다. 당시 우리 합창단이 했던 공연은 터키 당국이 허가한 최초의 선교 관련 연주회였다.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안디옥에 있는 크리스천 50여명을 초청했고 터키 정부요원들이 감시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독교 전도가 매우 힘든 이방 국가에서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나 같은 죄인 살리신’ 등을 찬양하면서 내 마음은 뜨거운 성령의 감동으로 끓어올랐다.

청중의 반응도 무척 뜨거웠다. 핍박 받는 소수자로서 어렵게 신앙을 지켜오던 그들은 성령의 은혜가 넘치는 찬양을 누구보다 갈망해왔던 것이다.

정리=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