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에 EU 선정’ 논란…“최악의 경제 위기 불렀는데…” 비판

입력 2012-10-13 00:36


서로 다른 국적과 인종, 종교를 가진 인류가 함께 살 수 있을까. 실질적으로 세계 최대의 국가연합체이자 단일 시장인 유럽연합(EU)은 인류의 이 오랜 숙제에 해답을 구하는 거대한 실험실이다.

노벨평화상위원회는 금융위기로 최대 어려움에 직면한 EU에 평화상을 수여해 인류 전체의 격려를 5억 유럽 시민에게 전달한 셈이다. 하지만 2002년 야심차게 시도한 유로화 단일 통화 실험은 회원국의 도덕적 해이와 대형 금융기관의 탐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오히려 세계적 위기를 불러왔다. 이 때문에 노벨상위원회의 결정에 비판도 나오고 있다.

◇엇갈린 반응=‘유럽 대통령’인 호세 마누엘 바호주 EU 집행위원회장은 노벨위원회의 평화상 발표 직후 트위터에 “5억 유럽 시민에게 엄청난 영예”라며 기뻐했다. 마르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도 “모든 유럽인이 받은 상”이라며 “인간 존엄과 자유·민주주의·평등 같은 가치가 EU를 지탱해 왔고 평화상이 이를 입증했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유로존 위기로 바닥을 치고 있는 그리스에서는 노벨평화상 소식을 애써 외면했다. 상당수 언론이 수상 사실을 아예 보도하지 않거나 단신으로 언급했다. 전날 신용등급이 투기등급 직전까지 추락한 스페인도 차분한 반응이었다.

비난도 있었다. 영국 독립당 당수 나이젤 파레이즈는 “지난 2년간 EU는 남북 간 적대감이 엄청나게 커졌다”며 “노벨평화상이 오명을 썼다”고 말했다. 평화상 후보였던 러시아 인권단체 ‘모스크바 헬싱키 그룹’ 대표 류드밀라 알렉세예바(85)도 “다음엔 (옛 소련 국가와 중국이 참여하는) 상하이협력기구(SCO) 차례인가”라고 비꼬았다.

◇유럽의 꿈과 유로존=“오늘부터는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 전쟁은 없다. 역사적인 맞수가 어떻게 가까운 협력자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자.” 1950년 5월 9일 프랑스 외무장관 로베르트 슈먼은 두 나라 사이에 석탄·철강공동체 설립을 제안하며 이같이 말했다. 2차대전 이후 독일의 재무장을 막으려는 프랑스와 유럽과 화해하려는 독일의 이해가 맞물려 출범한 ‘유럽 석탄·철강공동체’는 EU의 모태가 됐다. 이날은 유럽의 날로 정해졌다.

여기에 경제적 이득을 기대한 이탈리아와 베네룩스 3국이 합류하면서 유럽공동체로 발전했고 의회와 집행부를 갖추면서 EU로 발전했다.

공동시장을 통화동맹으로 끌어올린 2002년의 유로화 출범은 EU의 절정이었으나 이제는 60년 역사에 최대 난관이 되고 있다. EU가 유로존을 지키기 위해 포르투갈 스페인 그리스 이탈리아 프랑스에서 긴축을 강요하면서 반대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실업률과 가난에 허덕이는 남부 국가와 부채 부담을 나눠 지게 될까 두려워하는 북부의 부자 국가들 사이에 국수주의와 파시즘이 고개를 들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통합됐지만 정치적으로는 분열돼 있는 상황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유러피안 드림은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노벨평화상이 축하보다 격려의 의미가 더 크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