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값 900원·양면 복사비 50원… 노량진 고시촌 ‘불황 폭탄’
입력 2012-10-12 22:35
가난한 고시생 손님을 한 명이라도 더 끌어모으기 위한 서울 노량진 영세 자영업자들의 가격 경쟁이 눈물겹다. 900원짜리 커피가 등장하더니 복사 가격은 ‘양면 50원’까지 떨어졌다.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고시생은 반기고 있지만 상인들은 옆 가게의 눈치를 보며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가격을 내리고 있다.
12일 방문한 서울 노량진1동의 카페 골목. 동작경찰서를 지나 패스트푸드점이 즐비한 골목으로 들어가면 캔 커피 하나 가격인 ‘착한 가격’의 원두커피전문점이 즐비했다. 이곳에서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 가격은 대체로 1000원. 그러다 지난해 노량진역 인근의 한 카페가 990원에 커피를 팔기 시작했고 최근 900원짜리 커피까지 등장했다. 유명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과는 최대 5배까지 가격 차이가 난다.
한 곳은 커피값을 900원으로 내린 대신 ‘쿠폰 도장’을 없앴다. 이곳 관계자는 “1000원짜리 커피를 팔면 카드로 결제하는 손님이 많았는데 900원으로 내리고 현금 결제가 늘었다”며 “카드 수수료가 줄어 1000원으로 팔 때와 남는 것은 비슷하지만 손님이 훨씬 늘었다”고 말했다. 임용고시를 준비 중인 김정환(27)씨는 “부모님께 용돈 받아서 공부하는 형편에 한 푼이라도 아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900원짜리 커피가 등장한 뒤 눈치작전이 치열해졌다. 가격을 더 내릴 수 없다고 판단한 일부 상인들은 카페 입구에 ‘좋은 원두는 맛부터 다르다’는 내용의 ‘고급 커피’를 강조하고 나섰다. 1000원짜리 커피를 팔고 있는 한 카페의 김모(21)씨는 “지난해 여름 개점 행사로 1000원짜리 커피를 팔았는데 주변 가게도 우르르 따라 내려 어쩔 수 없이 1000원에 팔고 있다”며 “이제 더 이상 내릴 수 없다”고 말했다.
‘가격 전쟁’은 복사 가격으로까지 이어졌다. 고시생들은 책을 통째로 제본하는 경우가 많아 노량진에는 밥집만큼이나 인쇄업체가 많다. 이들은 오랫동안 ‘단면 30원, 양면 60원’으로 암묵적인 가격 합의를 한 상태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고시생들이 인쇄 업체를 찾으면 “양면에 50원”이라며 슬쩍 싼값에 제본을 해주며 단골로 유도한다. 이날 인쇄 업체 10곳을 돌아다녀 본 결과 2곳의 복사 가격은 ‘양면 50원’이었다. 이곳은 다른 곳과 달리 고시생들로 붐볐다.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김모(27)씨는 “고시생들은 모의고사 문제지를 복사해서 공유하는 경우가 많은데, 복사 비용이 10원이라도 더 저렴한 곳을 찾으면 밥 한 끼 비용을 아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