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 500만명 시대] 이들이 있어 세상은 훈훈하다

입력 2012-10-12 18:57


여덟살 태준이는 사람들과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는 아이였다. 표정은 늘 어두웠고 말도 또래보다 어눌했다. 엄마의 말과 아빠의 말을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우즈베키스탄 어머니는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래서 엄마와 대화는 거의 없었다. 농사일을 하는 한국인 아버지는 늘 들에 나가 아이를 돌봐 줄 시간이 없었다. 태준이가 태어난 충북 진천의 시골마을은 또래 친구도 대여섯명 밖에 없다. 그 아이들도 대부분 다문화가정 아이들이다. 이미 상처가 깊은 아이들은 친구들과 노는 것조차 귀찮고 두려웠다. 또 상처를 받을까봐. 엄마는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늘 외톨이인 태준이 곁에 다가가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엄마는 매일 혼자 눈물을 삼켰다.

몽골 출신 엄마를 둔 윤지(9·여)는 보통의 아이들과 다른 ‘외국인 엄마’를 싫어했다. 한국어가 서툰 엄마에게 배운 어눌한 말투 때문에 윤지는 학교에서도 외톨이였다. 늘 혼자 노는데 익숙해진 윤지는 마음의 문을 닫은 지 오래다. 윤지와 태준이는 한 마을에 살면서도 같이 놀지 않았다. 친구들끼리도 마음의 문은 닫혀 있었다. 그렇게 시골에 갇혀 살던 아이들에게 지난해 12월 어느날 ‘언니, 오빠’들이 찾아왔다. 동네 벽에 세계지도를 그리는 자원봉사를 하는 대학생들이었다. 서울 성동구청이 후원하는 ‘꿈꾸는 붓’ 자원봉사단이다. 이들은 벽에 그려 넣은 세계지도에 역사, 문화를 함께 교육하고 있다. 세계지도를 본 아이들이 넓은 세상으로 눈을 돌리고 큰 꿈을 갖도록 하자는 취지다. 주말을 이용해 5주간 한 마을에서 봉사를 한다.

서울에서 온 대학생들과 5주간 주말을 함께한 아이들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봉사활동에 참여한 연세대 사학과 주원진(26)씨는 “처음 도착했을 땐 풀이 죽어있는 아이들을 보고 너무 마음이 아팠다”며 “그런 아이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사람을 경계하고 눈도 마주치지 못하던 태준이도 그림 작업이 끝나갈 무렵 활짝 웃어보였다. 대학생 형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장난을 칠 정도였다. 아이 어머니는 어눌한 한국말로 연신 “고맙다”며 눈물을 흘렸다.

윤지 역시 이들과 함께 세계지도를 그리며 마음의 문을 열었다. ‘엄마의 나라’ 몽골을 그릴 때면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봉사단원들이 ‘징기즈칸’ 사진을 보여주니 ‘엄마’를 연신 외치며 신나했다. 엄마의 나라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봉사 단원들은 윤지를 비롯한 아이들에게 엄마의 나라 역사와 문화를 가르쳤다. 주씨는 “함께 그린 세계지도를 볼 때마다 아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큰 꿈을 가졌으면 좋겠다”며 “잠시 봉사활동을 했는데 아이들이 이렇게 달라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기준 자원봉사자가 492만명에 달하며 자원봉사자 500만명 시대를 열고 있다. 사회 곳곳에서 활동하는 자원봉사자들은 태준이와 윤지에게 웃음을 되찾아줬듯이 세상을 풍요롭게 하고 있다. 세계 곳곳의 오지에도 우리 자원봉사자들이 활동하는 등 국경도 초월했다. 봉사활동도 물질적 도움이나 청소, 빨래 등 노력 봉사를 넘어 갖가지 ‘재능기부’도 늘고 있다. 남들과는 다른 ‘뻔한 봉사’는 거부한다는 이색 봉사자들도 많다.

지난달 26일 동두천시 중앙동 골목에는 칼·가위의 날을 갈아준다는 ‘칼 갈이’들의 “칼∼ 갈아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무를 깎아 조각을 만드는 ‘서각 동아리’ 회원 5명이 그 주인공. 평소 작품 활동을 할 때 칼을 많이 사용하는 이들은 특기를 살려 ‘칼 갈이’ 이색봉사를 기획했다. 추석 전 음식 준비를 위해 칼을 사용하던 주부들부터 인근 식당 주민들까지 8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150여개의 칼·가위를 들고 나왔다. 한 주부는 “실생활에 필요한 도움을 줘 고맙다”며 음료수를 건네기도 했다.

이 봉사에 참여한 채성병(56)씨는 “봉사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만 하는 것이 아니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온정을 베푸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