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효의 진화] 넌 사먹니? 난 집에서 만들어 먹는다… 요구르트·청국장 제조기 불티
입력 2012-10-12 18:08
‘힐링’과 친환경의 만남
서울 망원동에서 이제 막 100일 지난 아기를 키우며 지내고 있는 주부 이모(34)씨는 지난해부터 집에서 직접 요구르트를 만들어 먹고 있다. 930㎖짜리 우유 한 팩에 시판되는 요구르트 한 병을 넣고 전자레인지에 3분 정도 조리한 뒤 하루 동안 실온에 두고 완성시키는 게 그만의 제조법이다. 한 번 만들면 1주일 정도는 원하는 만큼 요구르트를 먹을 수 있다. 이씨는 “원하는 과일을 추가해 먹을 수 있고 요리에도 활용할 수 있어서 자주 만든다”면서 “시판되는 제품은 단맛을 내려고 첨가하는 게 있는데 이건 그런 게 없어서 좋다”고 예찬론을 폈다.
이씨처럼 집에서 요구르트를 만들어 먹는 광경은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완성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지만 발효 음식에 익숙한 한국 사람들에게 그 정도 기다림은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12일 오픈마켓 옥션에 따르면 최근 한 달간 발효 식품을 직접 제조할 수 있는 요구르트, 청국장 제조기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가량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가격대도 1만∼3만원대로 저렴한 제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최근에는 우유팩을 그대로 사용해 위생적으로 제조할 수 있는 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옥션 관계자는 “최근에는 전기를 쓰지 않고 물중탕 방식을 이용해 만드는 제품도 나와 여성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집에서 발효 과정을 통해 만들 수 있는 음식은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가정 발효가 그만큼 활성화되고 있는지 살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과거에는 어느 집에서나 고추장, 된장, 간장 그리고 김치는 직접 담가 먹었다. 장독대는 주부들에게 보물단지와 동등한 대우를 받을 정도였다. ‘장맛’은 그 집의 자존심과 같았다. 하지만 요즘에는 대부분 사먹는다. 발효 제품 시장은 그만큼 커지고 있고, 가정에서 직접 하는 발효는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포장김치의 경우 가정용 시장이 3000억원에 달하고 된장, 간장 등 장류 시장은 1조원 안팎일 정도로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장맛은 정성인데 손이 많이 가는 탓에 바쁜 현대인들이 예전만큼 정성을 기울이기 힘든 탓이다. 또 핵가족화가 되면서 많은 양이 필요없게 된 것도 이유로 꼽힌다. 시판 제품의 맛에 길들여진 젊은층뿐만 아니라 과거에 직접 고추장 등을 해 먹었던 중장년층도 시판 제품을 사는 게 더 익숙하다고 입을 모은다. 60대 주부 정모씨는 “예전에는 맛이나 위생적인 면에서 의심이 가서 사는 걸 망설였는데 지금은 내가 하는 것보다 더 낫다고 생각이 들 정도여서 사먹는다”고 말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