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효의 진화] 암·노화 예방… 먹고 바르고 ‘발효 열풍’

입력 2012-10-12 18:08


‘힐링’과 친환경의 만남

흑초, 고무장갑, 에센스, 비누.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발효기술이 들어간 제품’이다. 발효는 아주 오래 전 인간이 자연에서 배운 친환경 가공기술이다. 몸에 이로운 물질을 찾는 방법을 탐구하고 아름다움을 유지하려는 본능이 인간의 유전자 속에 있었던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발효식품인 된장으로 암을 예방하고 쌀뜨물을 발효시켜 피부를 관리했다. 서양의 기원전 인물 클레오파트라는 피부 노화를 막기 위해 매일 아침저녁 발효시킨 우유로 마사지를 했다고 하지 않던가.

‘발효’가 주목받고 있다.

이전까지는 된장, 요구르트, 김치, 막걸리 등 ‘먹는’ 제품이 우리가 아는 발효제품의 전부였다. 하지만 친환경적인 재료, 몸에 이로운 제조법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기술연구가 활발해지고 제품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 이제 발효공법으로 만든 제품은 소위 ‘먹히는’ 아이템이 됐다.

발효는 효모 등 미생물이 만들어낸 효소가 유기물을 잘게 분해해 인간에게 유용한 물질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말한다. 발효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가장 대표적인 제품이 발효식품이다. 포도당과 효모의 결합은 막걸리를, 포도당과 젖산균의 만남은 치즈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전통 방식으로만 여겨지던 식품 발효공법은 연구를 통해 진화하고 있다.

다이어트 및 미용식품으로 애용되고 있는 흑초는 발효음식인 막걸리의 진화된 형태다. 현미에 누룩을 넣어서 막걸리를 만들고 이 막걸리를 다시 발효해 과일즙과 섞어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즐겨 마시던 요구르트도 진일보했다. 예전보다 유해독소가 증가한 장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한국야쿠르트는 최근 아기의 장에서 선별한 7가지 프로바이오틱스 유산균과 면역력 증진에 효과적인 엘더플라워 허브추출물을 더한 액상 발효유를 내놓았다. 몸을 위한 발효기술과 정신건강을 위한 친환경 아로마 세러피가 접목된 형태다.

혹시 도미의 꼬리비늘을 발효시켜 고무장갑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어봤는가. 발효 기술은 이제 신소재를 만드는 데도 쓰인다. 발효식품 기업 샘표는 지난 2010년 한국3M과 함께 콜라겐 성분을 넣은 고무장갑을 만들었다. 생선 꼬리비늘에 발효기술을 더해 피부를 보호하는 성분인 콜라겐을 추출해 낸 것이다. 발효기술은 조미소재를 만드는 데도 활용된다. 밀, 콩 등 식물성 단백질을 천연국균발효공법으로 분해하면 화학조미료(MSG)를 대체할 수 있는 천연조미소재 ‘발효펩타이드’가 만들어진다. 최근 라면스프, 과자가루, 냉동식품에 이 조미소재가 사용되고 있다.

요즘 발효공법에 가장 주목하고 있는 곳 중 하나는 뷰티 시장이다. 미생물이 물질을 발효시키는 과정에서 피부에 좋은 성분들이 나온다는 데서 연구가 시작된 것. 아모레퍼시픽은 25년간의 연구 끝에 10년 자연 숙성 발효된 콩에서만 극미량으로 추출되는 희귀 이소플라본 성분을 발견, 이를 ‘재두시법’(발효 과정을 두 번 거치는 방식)으로 발효시켜 화장품을 만들었다. LG생활건강이 만든 발효화장품은 유기농으로 재배한 50여 가지 식물을 자연 발효시킨 천연 성분으로 이뤄져 있다. 씨앗, 과일, 채소 등 24가지 식물 원료와 발효미생물 등을 오크통에 통째로 넣고 함께 발효시키는 ‘통발효 기술’도 개발했다. 막걸리의 천연효모 발효성분을 담은 비누도 만들었다.

사람들은 왜 점점 더 발효에 열광하는 것일까.

첫 번째로는 역사를 통해 우리에게 축적된 발효에 대한 신뢰와 익숙함 때문이다. ‘먹어서 몸에 좋은 것은 어디에나 좋을 것이다’라는 생각. 상처에 된장을 바르는 민간요법이나 쌀뜨물 세수가 우리에게 던진 메시지다.

친환경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부쩍 늘어난 것도 한 요인이다. 화학물질이나 인공적인 과정이 ‘내 몸을 망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면서 이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친환경 방식인 발효에 대한 니즈가 커졌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샘표 연구소 최용호 부장은 “발효과정을 거치면서 몸에 좋은 성분들이 새로 생성되기도 하고 기존의 좋은 성분들이 업그레이드되기도 한다”며 “발효과정은 인공의 화학적 과정이 아니라 미생물을 통해서 얻어지기 때문에 그 결과물들은 친환경적일 수밖에 없고 사람들은 그 점을 신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LG생활건강 화장품연구소 황승진 책임연구원은 “발효 추출물은 활성산소의 생성을 막아 항산화 효과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발효액에 풍부하게 존재하는 미생물이 안색을 개선하는 효과를 지닌다”며 “미생물과 효모 등의 작용으로 화장품 성분의 입자가 피부 세포 간격보다 작게 쪼개져 피부에 빠르고 원활하게 영양분을 흡수시킨다”고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