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 500만명 시대] 봉사활동 빛과 그림자… ‘보람’보다 스펙쌓기 씁쓸한 여운
입력 2012-10-12 18:06
자원 봉사자 500만명 시대를 맞고 있다. 우리나라 인구 10명 가운데 1명은 자원봉사활동 경험이 있다는 의미다. 해외봉사활동 참가자도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자원 봉사자 500만명이라는 외형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아직 봉사활동의 질적인 수준이나 내용은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12일 보건복지부와 한국사회복지협의회가 발간한 ‘2011 사회복지 자원봉사 통계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8810개 자원봉사관리센터에 등록한 자원봉사자(누적)는 492만859명을 기록했다. 1인당 주간 1.73시간의 자원봉사를 했고, 자원봉사 활동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할 경우 7조4219억원에 달했다. 이 중 지난해 1회 이상 활동한 자원봉사자는 153만1268명으로 집계됐다.
해외 봉사 활동자도 늘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해외봉사단원은 2000년 126명에서 2010년 1000명으로 증가했다. 국제구호개발 NGO 굿네이버스를 통해 해외봉사를 떠난 사람도 2000년 16명에 불과했지만 2010년 619명으로 늘어났다.
흥미로운 것은 10대와 20대의 봉사활동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지난해 국내 활동 자원봉사자 153만명 중 10대가 70만4095명으로 가장 많았고, 20대(25만5346명)가 뒤를 이었다. 10대 중 중학생은 30만6604명, 고등학생이 28만3657명이었으며. 20대는 대학생이 20만2396명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해외봉사자도 10∼20대가 다수였다.
10∼20대 자원봉사자가 전체 자원봉사자의 60%를 차지하는 기형적인 구조는 결국 입시와 취업의 영향 때문으로 분석된다. 현재 초등학교는 연간 10시간 내외, 중·고등학교는 20시간 내외의 자원봉사를 권장하고 있다. 서울의 경우 중학교는 18시간 이상은 8점, 15∼18시간은 7점, 15시간 미만은 6점을 고입내신에 반영하고 있다. 대학들은 또 고등학생의 봉사활동 시간과 결과에 가중치를 부여해 대학 입시에 반영하고 있다.
서울 영등포동 A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김수연(18)양은 “대학 입학사정관 전형 면접에서 봉사활동시간과 활동 내역 등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들었다”며 “친구들과 경쟁이 붙어서 주말마다 지역아동센터나 노인복지회관 등에 가서 1∼2시간씩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에게도 자원봉사는 필수다. 지난해 8개월간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봉사활동을 다녀온 한승호(26)씨는 “기업 입사지원서에 봉사활동, 해외연수 경험을 기재하게 돼 있는데, 해외 봉사활동을 다녀오면 한 번에 둘 다 해결할 수 있어 1석 2조”라고 말했다. 때문에 자원 봉사가 타인을 위한 진심어린 봉사가 아니라 자신을 위한 ‘스펙 쌓기’로 자리잡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지난 8월에는 성폭행에 가담했던 학생이 지난해 성균관대 입학사정관제 리더십 전형에서 ‘봉사를 많이 했다’는 교사 추천서와 자기소개서를 제출해 합격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봉사활동이 입시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악용해 학생들에게 부당한 요구를 하는 자원봉사기관도 없지 않다. 최근 서울 강동구의 한 지역아동센터에서는 센터장이 봉사활동을 나온 고등학생 10명에게 기부금을 강요한 일이 드러나 파문이 일었다.
그럼에도 학생들의 봉사활동은 적극 권장해야 할 일이다.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스펙을 위해 봉사활동을 시작하더라도 결국 보람을 느껴 봉사가 지속되도록 해야 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기관들에서 몰려드는 학생들 때문에 허드렛일을 시키거나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현장에는 실질적 도움이 되고, 봉사참여자들에게는 의미 있는 경험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