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 500만명 시대] 쪽방촌 할머니의 은혜 갚기… ‘당사자 자원봉사’
입력 2012-10-12 21:31
세 차례의 무릎 수술로 거동이 불편한 강순열(80) 할머니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일주일에 두세 번은 꼭 서울 동자동 ‘사랑방’ 공간에 들른다. 쪽방촌 주민들의 쉼터인 이곳은 하루에도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드나들며 식사도 하고 함께 이야기꽃을 피운다. 이곳에서 만난 강 할머니는 최근 시작한 텃밭 봉사 이야기를 꺼냈다. 강 할머니 역시 쪽방촌 주민이다. 봉사 서비스를 받는 수혜자가 역으로 봉사를 하는 ‘당사자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쪽방촌 주민의 자활을 돕기 위해 서울 노들섬 한강 다리 밑에서 시작된 ‘한강 농장 텃밭 사업’은 올여름부터 시작됐다. 강 할머니는 이곳에서 고추·오이·가지 등 농작물을 심고 가꾸는 봉사를 도맡아 했다. 강 할머니는 “평생 불편한 몸을 이끌고 병원 주방에서 일했지만 지긋지긋한 가난이 떨쳐지지 않았다”며 “봉사를 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고 마지막 희망을 보게 됐다”고 말했다. 또 그는 “어려운 형편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봉사로 쪽방촌 주민들의 삶이 조금 더 나아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강 할머니 등 자원 봉사자들이 가꾼 텃밭 농작물은 쪽방촌 주민들의 소중한 먹거리로 쓰일 계획이다.
강 할머니가 봉사를 시작한 것은 3개월 전 ‘동자동 사랑방’ 주민에게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서다. 강 할머니는 현재 한 달에 기초생활수급 보조금을 35만원 받고 있지만 이마저도 20만원 방세를 내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은 턱 없이 적다. 당시 발목이 얼굴 만하게 퉁퉁 부어올랐지만 병원에 갈 돈이 없던 강 할머니는 치료를 꿈도 꾸지 못했다. 이런 강 할머니에게 손을 내민 것은 바로 동자동 사랑방에서 하고 있는 ‘당사자 조합’. 쪽방촌 주민들은 매달 5000원에서 만원씩 출자해 어려운 조합원에게 대출하고 있다. 강 할머니 역시 이 조합비로 수술비를 마련했다.
동자동 사랑방 엄병천 대표는 “‘당사자 자원봉사’는 자신이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주민들에게 현실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며 “단순 자원봉사에서 전문성과 책임감을 높여 자원 활동가로서 성장한다면 좋은 결실을 맺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