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비켜간 노벨문학상을 바라본다

입력 2012-10-12 18:59

예술은 치열한 자기탐구의 결실이다. 개별적인 독창성 혹은 전체의 조화를 통해 메시지를 전한다. 장르별, 동서양, 시대별로 수없이 다양한 층위를 이룬다. 거기에는 랭킹이 있을 수 없다. 유명세나 시장의 선택에 따라 더러 등위가 매겨지기도 하지만 예술의 본질에 대한 평가는 아니다. 더욱이 문학세계에서 우열을 정하는 작업은 부질없다.

그러나 상에 무심한 사람도 없다. 상 자체가 일정한 성취에 대한 다수의 인정이자 강력한 인센티브다. 미술작품이 겨루는 비엔날레에서도 상을 주고, 음악콩쿠르에서도 기어이 1등을 찾아낸다. 김기덕 감독의 작품에는 불편해하면서도 그의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에는 박수를 보낸다. 문학도 그렇다. 신인상부터 본격 문학상 등 여러 상이 있어 역량 있는 작가들을 찾아내고 격려한다.

올해 노벨문학상의 임자는 중국 작가 모옌이었다. 서방 언론은 모옌과 무라카미 하루키를 세워 중-일 대결이라고 표현했고, 우리 언론은 고은 시인을 보태 삼국지로 묘사했지만 노벨은 ‘붉은 수수밭’을 선택했다. 올 6월 중국 건축가 왕수가 프리츠커상을 받은 것처럼 대륙의 문화적 자산을 감안하면 수상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본국에서도 “중화민족의 우수성을 과시했다”며 축제 분위기라고 한다. 다만 2000년 가오싱젠이 중국계 작가로는 처음 문학상을 받을 때나, 2010년 반체제 지식인 류샤오보가 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될 당시 노벨위원회를 향해 퍼부었던 비난을 생각하면 우스꽝스런 풍경이다.

이제 다시 우리를 돌아볼 때다. 언어를 매개로 하는 문학은 구름 속에 있지 않다. 기본적으로 책을 통해 생산되고 전파되는 예술이다. 우리 출판생태계는 말라 죽을 위기에 처했는데도 서방에 번역만 많이 하면 노벨상을 품을 것으로 안다. 모든 문화가 그렇듯 우리가 잘 하면 저절로 남이 알아주게 돼 있다. 정부가 문학과 출판을 우습게 알고, 국민들이 1년 내내 소설 한 편 읽지 않은 채 한림원의 낭보를 기대하는 것은 우스운 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