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년, 이순신-⑮ 한글] 아내와 편지를 나누다

입력 2012-10-12 18:52


경제 논리 때문에 공휴일에서 제외되었던 한글날을 다시 공휴일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공휴일 지정 여부보다 한글의 오·남용, 외국어 우선주의가 더 큰 문제가 아닐까.

현재 이순신과 관련해서 전해지는 각종 기록에 한글로 된 문서는 없다. 그러나 이순신도 한글을 잘 알았다. 한문으로 기록된 ‘난중일기’에는 아내 방씨의 한글 편지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1594년 6월 15일). ‘이충무공전서’의 한시 ‘한산도가’도 본래 한글 시조를 한문으로 바꾼 것이라고 한다.

한글의 가장 큰 장점은 우리말을 우리글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생각하는 것, 표현하려는 것, 마음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때문에 임금을 비롯해 사대부들은 한글을 경시하면서도 적극 활용했다. 성종은 홍문관의 탄핵을 받은 신하들이 사퇴를 청하자 자신의 입장을 한글로 써서 신하들에게 보였다. 선조도 임진왜란 때 일본군에 가담했던 백성들에게 다시 돌아올 것을 당부하는 한글 유서(諭書)를 내려 보냈다.

한문을 모르는 일반 백성들을 위한 조치였다. 한글은 국가기밀 유지 수단으로도 활용됐다. 성종 때 양성지는 우리나라 총통술이 일본에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병장도설’ 기록을 삭제하고 한글로 적어서 보관하자고 주장했다. 중종 때는 한글을 중국인에게 가르친 사람을 처벌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방씨 부인이 이순신에게 보낸 편지처럼 부부 사이에 많이 활용되었다. 어려운 한문 대신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한글로 서로의 마음을 전했다. 한글 창제 이후 19세기까지 쓰여 남아 있는 한글편지 약 2500통 중 부부 사이에 주고받은 것이 1000통에 이른다.

이순신과 비슷한 시기의 인물인 홍의장군 곽재우의 종질인 곽주와 그 부인이 주고받은 편지도 대부분 한글이었다. 그중에는 자식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라고 요청한 편지도 있다. 사대부로서 과거시험에 필수적인 한문 공부도 중요했지만, 일상생활의 소통을 위해 한글도 반드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한글은 뛰어난 과학성을 자랑하면서도 변방의 문자처럼 취급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한문에, 강점기에는 일본어에, 지금은 영어에 밀려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한다. 말로만 한글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한글을 사랑하자. 이순신이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한글을 사랑한 것처럼.

박종평(역사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