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현의 사막의 구도자들] 매춘의 역사에 대해서
입력 2012-10-12 17:34
‘성매매특별법’은 2004년 9월 23일 전격적으로 시행되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 성매매를 금지한 이 법을 놓고서 설왕설래하고 있는 실정이다. 성매매특별법과 현실의 괴리에 대해서 여러 전문가들의 논의를 접해본 나이지만 시비를 가릴 수 있는 입장도 아니고 법 개정의 방향을 논할 수 있는 식견도 갖추질 못했다. 그럼에도 성매매에 관한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스케치해 보는 것이 무익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고대 근동의 세계에서 매춘은 아주 일상적인 것으로 종교 일반이 매춘과 결합되어 있을 정도였다. 이집트나 고대 바벨론의 신전에는 아예 성교를 위한 방이 따로 존재했다. 구약성경에 자주 언급되는 바알 숭배나 아세라 숭배에서도 예배 의례로서 신전매춘이 행해졌다(왕상 14:24). 모세의 법은 제의적 매춘을 가증스런 것으로 엄격히 금지했으나(신 23:18), 이스라엘의 종교도 신전매춘에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삼상 2:22). 요시아 왕은 ‘주의 성전’에 있던 아세라 목상과 남창의 집을 깨끗이 없애버렸다고 한다(왕하 23:6∼7). 하나님의 성전에 남창의 집이 있었다니, 이 시대의 유대교가 주변 종교의 신전매춘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았는지 가늠이 잘 안 될 정도이다.
주변 종교의 영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구약성경에는 매춘이 다소 느슨하게 다루어진다. 유다는 스스럼없이 성매수를 했으며 단지 화대를 지불하지 못해서 비난받지나 않을까 염려하는 정도였다(창 38:23). 모세의 법은 딸을 매춘부(혹은 노예)로 파는 것을 허용한다(출 21:7). 사사 입다는 창녀에게서 난 아들이었는데 아버지의 유산을 상속하지 못한다는 점 외에는 특별한 차별이 없었다(삿 11:2). 삼손도 매춘부 집에 들어가지만 별다른 비난을 받지 않는다(삿 16:1). 솔로몬의 유명한 재판은 갓난 아이 하나를 놓고 두 명의 매춘부가 벌이는 다툼을 해결한 것이다(왕상 3:16∼28).
반면 예수는 매춘 자체를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예수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사람은 이미 마음으로 간음한 것이라고 가르쳤다(마 5:28). 하지만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돌로 치려는 군중을 향해 “너희 가운데서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지라”고 주신 말씀(요 8:7)은 성매수를 일상적으로 하던 유대인 남자들에 대한 질책으로 들린다. 사도 바울도 “창녀와 합하는 사람은 그와 한 몸이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고전 6:16)라고 하면서 매춘을 혐오했지만, 그의 외침이라도 성 산업이 활개 치던 항구도시 고린도를 변화시킬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 시대의 로마법은 남자들이 천한 계급의 여성과 성관계를 갖는 것을 폭넓게 허용했다. 예수와 바울의 엄격한 가르침은 사회적 현실과 커다란 괴리가 있었다.
교회의 교사들은 4세기 이후에도 성매수를 금하는 설교를 계속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매춘은 사회적으로 늘 용인되었다. 당시 로마법을 따르면 노예, 무희, 술집여자 등 천한 계층의 여성과 성적 교섭을 하는 것은 형법상 범죄가 아니었다. 모니카의 경우는 젊은 아들 어거스틴에게 여자들과의 성교(性交)를 금하되 첩이나 창녀가 아니라 기혼녀와 성교를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기혼녀와의 성적 교섭은 형법상 범죄였지만 천한 계층에 속한 여성과의 성적 교섭은 범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거스틴이 선택한 것은 일회적인 성매수 정도가 아니라 신분이 낮은 여성, 아마도 노예나 매춘부였을 두 여성과 차례로 내연관계를 맺는 것이었다. 파울리누스라는 이름의 교회지도자는 젊은 시절 부모가 신붓감을 찾아주기 전까지 집안의 여노(女奴)와 잠자리를 같이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5세기 아를르의 한 설교가는 교회의 일원 중에서 부인 없이 여행하면서 성적인 방탕을 일삼은 것을 자랑스레 떠벌리는 자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교회의 문을 잠그고 호된 설교로 훈계해야 했다.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에도 매춘에 관한 내용이 여러 번 나온다.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던 한 여인이 매춘을 하여 그 수입으로 가난한 자를 도왔다. 이 여인은 아름다웠기에 부유한 연인을 많이 갖게 되었고 점점 더 많은 자들을 도울 수 있었다. 압바 포이멘은 이 여인 안에 믿음의 열매가 있으므로 매춘하는 것이 아니라고 두둔하였다. 고대로부터 그 시대까지 지속되던 신전매춘의 맥락에서만 이해 가능한 태도이다. 이런 이야기는 매춘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 것인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두 형제가 손노동으로 만든 그릇을 팔기 위해 시장에 갔다. 그중 한 형제가 도시의 유곽으로 가서 성매수를 하였다. 이 행위는 당시의 법으로는 범죄가 아니지만 하나님께 죄를 범한(고전 6:16) 이 형제는 우여곡절 끝에 회개에 이르게 된다.
초대 기독교 시대는 물론이거니와 기독교의 영향력이 절정에 달하던 중세, 마르틴 루터를 시발로 한 종교개혁기에도 기독교는 매춘행위를 강력하게 질타하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런 설교적 이상과는 달리 매춘을 허용하지 않던 시대는 없다. 인류 역사에서 법을 통해 매춘을 없애려는 시도는 언제나 실패에 직면했다.
매춘의 역사가 시사하는 바가 무엇일까. 성매매특별법 정도로 매춘행위를 근절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너무 안일한 자세가 아닌가. 성매매는 몇 줄의 법조문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인류 역사의 난제이니 말이다. 비록 나로서는 무슨 해결책을 내놓을 만한 처지가 아니다. 하지만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매춘에 관련된 인류 역사와 종교와 문화를 보다 깊이 있게 접근해 본다면, 적어도 근시안적인 처방을 피할 수 있고, 소위 ‘풍선효과’가 불거지는 것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한영신학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