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교회가 있었네-청남대교회] 19대 종손·산덕리 케니 지 “우리동네 믿음도 감처럼 잘 익었지”

입력 2012-10-12 17:35


충북 청원군 문의면 문의삼거리에서 10여분쯤 구불구불한 코스모스 길을 따라가면 멀리 황금 논밭이 펼쳐져 있고 청명하게 흐르는 대청호가 눈부시다. 대청호가 시야에서 멀어질 때쯤 진홍빛 열매를 맺은 감나무를 배경으로 청남대교회 십자가가 빛난다.

제사상 차리느라 멀어졌던 하나님

산덕리 청남대교회에서 8㎞쯤 떨어진 곳에 ‘따뜻한 남쪽의 청와대’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청남대가 자리 잡고 있다. 대청호반의 수려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청남대는 1983년 대통령 전용별장으로 건립된 이후 2003년 일반에 개방됐다.

청남대를 찾는 관광객들은 많지만 청남대 인근의 마을은 인적이 드물다. 농사를 지을 젊은 사람들은 일터를 찾아 도시로 떠났고 대부분 고령의 어르신들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청남대교회가 자리 잡은 산덕리는 영산 신씨 집성촌이다. 불교를 믿는 주민들도 많다. 산덕리 토박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성도는 “무속신앙이 오래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 무당들의 영향력이 컸고 우상에 찌들어 있던 곳”이라고 설명했다.

“웬일인가 내 형제여 마귀만 따르다 저 마귀 지옥 갈 때에 너도 가겠구나….”

지난 4일 청남대교회에서 만난 박종임(77) 할머니는 제사상에 올릴 부침개를 부치다가 찬송가 ‘웬일인가 내 형제여’를 나지막하게 읊조렸던 때를 떠올렸다. “왜 그라느냐”고 묻는 시어머니에게 그는 “골이 아프네유”라고 대답하고는 방에 들어가 혼자 울었다고 한다.

박 할머니는 1951년 열망골로 시집을 온 뒤 한동안 교회에 나가지 못했다. 누가 찢어버릴까 봐 성경책을 옷 보따리에 싸서 시집을 올 정도로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는데도 말이다. 박 할머니는 “1년에 제사를 10번 넘게 지내는 종갓집 며느리가 되고 나서 우울증을 겪었다. 그땐 바깥을 내다볼 새도 없이 제사 음식 만들고 농사일 돕는 게 전부였다”면서 한숨을 쉬었다.

예배당에 가고 싶어 혼자 끙끙 앓던 박 할머니는 결국 다섯 살짜리 딸을 데리고 고개를 세 개 넘어야 도착하는 교회에 찾아가는 모험을 감행했다. “계속 그 ‘웬일인가 내 형제여’ 찬송 구절이 마음을 울렸어. 시댁 어른들이 죄다 핍박했지만 죽기밖에 더하겠느냐는 심정으로 교회에 나갔지.”

눈치를 보며 교회에 다니던 박 할머니는 10여년 전부터 마음 편히 주일예배를 드리게 됐다. 자녀 5명뿐 아니라 완고했던 남편 최문규(81) 할아버지까지 모두 크리스천이 된 덕분이었다. 시부모는 끝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곁에 있던 남편을 보면서 박 할머니는 “이 노인네 나이 먹거든 한 번 보자 했었는데 하나님이 집사님 딱지를 붙여놓으셔서 이제는 어떻게 하지를 못하겠어. 영감이 교회에 나온 건 기적 중의 기적이야”라며 웃음을 지었다.

최 할아버지가 멋쩍은 듯 말문을 열었다. “내가 19대 종손이라 지사(제사) 때문에 그전에는 그랬지. 우상숭배 하느라고…. 옛날에는 다 그랬어유. 근데 이제는 나도 찬송 부르는 게 젤 좋아. 하늘나라도 맘 편히 갈 수 있고.”

이혜자(72) 할머니도 충북 청주에서 괴곡리로 시집온 이후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하다가 8년 전부터 교회에 나왔다. “이 마을로 시집오고 나서는 애들 다 키워놓고 교회에 나간다고 했어요. 교회 갔다 오면 두어 시간은 밭에서 일을 못하고 집안 분위기도 안 좋아지니까.”

12세 때 침을 맞은 게 잘못돼서 오른쪽 다리를 구부리지 못하는 이 할머니는 50여 년 전에 어머니의 권유로 충북 청주에 있는 교회에 다녔었다. 이 할머니는 “몸이 불편하니까 슬픈 마음을 먹을까봐 교회에 나가라고 한 것 같다”고 했다.

이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하지만 교회에서 주방 일을 거드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이 주방장 직분을 주셨으니까 몸은 불편해도 열심히 해야지. 여기 노인대학에 나오는 분들이 맛있게 드셔주시는 게 제일로 고마워”라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노인대학에 나오는 어르신 가운데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모두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늘 기도한다고 했다.

교회 3곳 합병 이후 노인대학 열어 성장

청남대교회는 문의면에 흩어져 있던 마동·산덕·열망 교회가 2010년 12월 합쳐져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94년 1월 마동교회에 부임한 최태환 목사는 “당시 마동교회에는 성도 10명이 전부였고 대부분 70세 이상의 고령자들이었다”며 “산덕·열망 교회의 사정도 비슷해 합치는 방안을 추진했다”고 말했다.

산덕교회 자리에 청남대교회가 세워진 뒤 재적 교인 수는 30여명에서 60여명으로 늘어났다. 성도 수가 배로 늘어난 데는 지난해 3월 문을 연 노인대학의 역할이 컸다.

어르신들을 상대로 한글교실, 건강체조, 흘러간 가요 부르기, 컴퓨터 교육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한 것이다. 노인대학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어르신들이 자연스레 복음을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교회 합병 이전에 최 목사는 일대일 전도에 전념했다. 마을 어르신 집에 찾아가 보일러 수리, 전기배선 점검 등 궂은일을 도맡아 했고 건강에 이상은 없으신지 일일이 확인했었다.

합병 이후 신경을 써야 할 지역이 1개 리에서 7개로 넓어지자 최 목사는 노인대학을 설립했다. 그는 “한 개 리였을 때는 어르신 한 분 한 분 신경을 쓸 수 있었는데 관할 구역이 커지고 나서 대안을 모색하던 끝에 노인대학을 열었다”고 설명했다.

목요일 오전에 열리는 청남대교회 노인대학은 반응이 좋았다. 문의면 주민 600여명 가운데 65세 이상 어르신들이 절반 이상인데도 주변에 제대로 된 노인복지시설이 없었기 때문이다.

“코스모스 피어 있는 정든 고향∼역. 이쁜이 곱분이 모두 나∼와 반∼겨 주겠지.”

아들 박형수(47)씨의 손을 잡고 노인대학에 나온 양재순(81) 할머니는 구성진 색소폰 가락에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불렀다. 양 할머니는 “아들이 예수님을 믿으니까 2002년부터 아들 따라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면서 “예수님 은혜로 아들이 잘됐으니까 한량없이 감사하다”고 말했다.

마동리에 사는 이들 모자(母子)는 하나님을 영접한 뒤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입에 붙었다. 우울증을 앓아 한동안 방황했던 아들이 교회에 다닌 뒤 밝아졌고 청주에 있는 작은 회사에 취업했기 때문이다. 또 박씨가 몽골 출신 이주여성과 결혼을 해 양 할머니는 귀여운 손주를 안아보게 됐다.

어머니와 함께 지난 일을 떠올리는 박씨의 입가에선 웃음기가 떠나지 않았다. “저는 다 감사해요. 가진 거는 별로 없어도 그냥 주님 손잡고 살아가는 사람이니까 모든 게 감사해유.”

양 할머니를 비롯해 노인대학 학생 40여명의 흥을 돋운 ‘산덕리 케니 지’는 신법인(57) 장로였다. 4년 전부터 색소폰을 배운 신 장로는 “노인대학 어르신들 뵈려고 휴가를 내곤 하는데 매주 나오지 못해 죄송하다”며 “교회에 나오면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눈물이 고일 때가 있다”고 말했다.

신 장로에게 청남대교회는 아버지를 추억할 수 있는 뜻 깊은 장소이다. 청남대교회의 전신인 산덕교회를 지을 때 건축위원장을 맡았던 그의 아버지는 팔을 걷어붙이고 벽돌을 나르는 일에 나섰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너는 젊으니까 죄다 어르신들밖에 없는 우리 교회에 와서 전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교회는 거의 목사님 가족들만 예배를 드릴 정도로 사정이 열악했기 때문이다. 2000년 세상을 뜨기 전 그의 아버지는 “등기를 자식한테 내줬어도 모든 재산은 하나님의 것”이라며 “아직 믿음이 없는 가족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라”고 유언을 남겼다.

신 장로는 농림수산식품부 산하 영동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일하고 있다. 전에는 충북 제천, 청주 등지에서 10여년간 머물렀다. 다른 지역에서 근무를 할 때에도 그는 주일이면 이 마을에 들러 예배를 했다고 한다.

신 장로처럼 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이 많아 청남대교회의 미래가 밝다고 최 목사는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순수한 시골 성도들을 보면서 이곳에서 뼈를 묻을 각오로 목회를 하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최 목사는 “노인대학과 청소년 수련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교회 인근의 폐교 부지를 매입하기 위해 기도하고 있다”며 “더 많은 어르신들이 하늘나라에 가기 전에 하나님을 영접하고 도시 학생들도 찾아오는 교회로 성장했으면 한다”고 했다.

청남대교회 가는 길

서울에서 자동차로 2시간30분 이상 걸린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가다 청원JC에서 당진·상주고속도로 상주 방면으로 갈아탄다. 이어 문의IC로 빠져나와 문의교차로에서 대전 방면으로 좌회전한 뒤 문의사거리에서 다시 회남·청남대 방면으로 좌회전한다. 509번 지방도로로 진입한 뒤 괴곡삼거리에서 보은·회남 방면으로 3.6㎞쯤 가다가 우회전 해 산덕길을 따라가면 우측에 교회가 보인다.

청원=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