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조약 문서 공개하라”… 日 법원, 자국 정부에 명령
입력 2012-10-11 22:20
일본 법원이 1951∼65년 한·일 국교정상화 교섭 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작성한 한·일기본조약 관련 문서를 상당수 공개하라고 명령했다. 이번 판결로 공개될 문서에 일제 강점기 피해자 보상 및 일본군 위안부 청구권 문제 등 한국에 유리하게 해석될 내용이 담겨 있을지 주목된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11일 일본 도쿄지방법원 민사2부는 일본 외무성이 한·일기본조약 관련 일본측 문서를 공개하지 않아 제기된 ‘문서공개거부처분 취소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가와카미 유타카(川神裕) 재판장은 전체 문서 382건 가운데 212건을 전면 공개하고 56건을 일부 공개하라고 결정했다. 이는 6만 쪽 중 4만 쪽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법원 판결에 따라 일본 정부는 독도와 관련, 한국과의 교섭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비공개한 44건 중 31건은 전면 공개, 8건은 일부 공개해야 한다. 또 향후 대북 교섭에서 불리할 수 있다는 이유로 비공개한 256건에 대해서도 117건은 전면 공개해야 한다. 이번 소송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를 비롯해 진보적 일본인 역사 연구자 등 양국에서 모두 11명이 참가했다.
시민단체와 위안부 피해자 등은 그동안 3차례 일본의 한·일기본조약 문서를 공개하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1차 소송 승소 이후 공개된 서류에는 ‘한일청구권 협정 체결 후에도 개인청구권은 유효하다. 청구권협정과 개인청구권은 무관하다’는 내용의 일본 외무성 내부문서도 포함돼 있었다. 이는 한국을 상대로는 개인청구권 소멸을 주장했지만 정작 일본 정부는 개인청구권이 유효하다는 취지로 문서를 작성했다는 것이다. 2차 소송은 패소했다.
이번 3차 소송 판결로 어떤 문서가 공개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소송 대상에는 청구권협정, 독도, 북한 등과 관련한 문서가 다수 포함돼 있다. 따라서 문서가 공개될 경우 한·일 양국관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특히 3차 소송에서 공개명령을 받은 문서들이 과거와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압도적으로 분량이 많다는 점에서 파괴력을 지닌 사실이 밝혀질 가능성이 있다. 더욱이 독도 관련 문서는 당시 한국이나 일본의 제안 중 어느 한쪽에 크게 불리한 내용이 섞여 있을 수도 있다. 원고 중 한 명인 최봉태 변호사는 “일본이 독도와 관련한 국제사법재판소 얘기를 수십년간 꺼내지 못한 이유가 공개될 수도 있다”고 기대했다.
우리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 해결에 나쁘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조태영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일본 국내법 상황임을 들어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다. 다만 “외교문서를 공개할 경우 양국 국민이 한·일 국교 정상화 과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조 대변인은 이어 “위안부 및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는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된 것이 아니다”며 우리 정부의 양자 협의 요청에 일본이 조속히 응하길 재차 촉구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위안부, 강제동원, 원자폭탄 피해자 보상에 대해 일본 정부는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법적 해결이 완료된 상태라는 입장인데, 향후 이에 상반되는 문서가 공개될 경우 우리에게 조금 더 유리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2005년 한국 정부가 한·일 청구권협정 우리 측 문서를 전면 공개한 데 비해 일본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부분을 제외하고 부분 공개한 상황을 감안하면 우리에게 크게 불리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1심 판결대로 곧바로 문서를 공개할 수도 있고, 2주내에 항소할 수도 있다.
구성찬 이성규 기자 ichthu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