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물질 완제품·소규모업체 규제 대상 제외… 불산 후속대책 법률안도 곳곳 누수
입력 2012-10-11 19:04
경북 구미에서 발생한 불산가스 사고 직후 환경부가 지난달 28일 국회에 제출한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제정안도 허점투성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사고 위험이 높은 소규모 업체는 상당수가 관리 대상에서 제외되는 데다 완성품에 대한 규제도 빠져 있다.
11일 환경부 등에 따르면 화평법은 연간 1t 이상의 화학물질을 제조·수입하는 경우 2년 주기로 보고해야 하고, 환경부가 화학물질 유해성 심사를 통해 유독물 여부를 지정하도록 했다. 제정안은 등록 없이 화학물질을 유통하다 적발되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했다. 환경부는 화학물질 등록 평가 제도인 유럽연합(EU)의 ‘리치(REACH)’ 법을 원용해 화평법을 만들었다.
그러나 1t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을 비롯해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전자공장 등은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관리 대상도 정부가 유독물로 지정한 화학물질로 한정했다. 이에 따라 환경부가 지나치게 업계의 눈치를 살펴 법조항을 ‘톤 다운’시켰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환경운동연합 시민법률센터 정남순 변호사는 “EU의 리치법은 모든 화학물질을 관리 대상으로 삼았지만 화평법은 정부가 심사한 유독물만 관리하겠다는 것”이라며 “화평법은 화학물질로 만들어진 완성품에 대한 규제도 빠져 있어 가습기살균제 파동이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화학물질 관련법이 통합되지 않아 구미 불산 사고에서도 환경부와 지식경제부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지경부는 “탱크로리에 담겼던 불산이 액체 상태였기에 환경부 소관”이라고 했고, 환경부는 “액체 상태의 불산이 기체로 변해 피해를 입혔으니 지경부 관할”이라고 맞섰다.
순천향대 박정임 교수는 “구미 사고는 법만 잘 적용했어도 발생하지 않았다”며 “다양한 법률을 통제하고 책임질 주체가 없어 피해를 키웠다”고 말했다. 현재 화학물질 관련 법규는 고압가스안전관리법(지경부), 산업안전보건법(고용노동부), 유해화학물질관리법(환경부) 등으로 쪼개져 있다.
한편 환경운동 단체들의 협의체인 한국환경회의는 “구미 불산가스 누출 사고는 환경부의 유해 화학물질 관리 미흡은 물론 환경재난 대응 시스템의 무능을 보여줬다”며 유영숙 환경부 장관 해임을 촉구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