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無’ 대리운전… 사고나도 “묻지마”
입력 2012-10-11 19:04
직장인 A씨는 회식 후 대리운전을 불러 귀가하던 중 대리기사가 횡단보도에 있던 보행자를 다치게 하는 사고를 냈다. 보행자에 대한 치료 등은 A씨의 책임보험으로 처리했으나 차량 파손에 대해서는 대리운전 업체가 대리기사에게 책임을 미뤘다. A씨는 대리기사에게 연락하려 했으나 대리기사는 잠적한 뒤였다.
대리운전 업체가 난립하면서 각종 사고와 민원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대부분의 대리운전 업체가 보험 가입도 하지 않고 아무런 규제도 받지 않은 채 운영돼 이용자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대리운전 업체의 부당행위를 고발하는 사례가 늘고 범죄에 악용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11일 국민권익위원회와 업계 추산에 따르면 전국의 대리운전 업체는 7000여개다. 대리기사 등 업계에서 일하는 인력은 8만∼12만명에 달하고, 이들이 하루에 받는 대리운전 요청 전화는 약 40만건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대리운전이 확산되고 있지만 이용자들의 불안감은 줄지 않고 있다.
일본의 경우만 해도 ‘운전대행법’을 제정해 경찰청의 인가를 받아 대리운전 영업을 하도록 하고 있고, 운전대행보험 가입도 의무화되어 있지만 우리는 아무런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다.
최근 3년간 대리기사에 의한 교통사고는 경찰이 집계한 것만 총 830건에 달한다(표 참조). 하지만 사고가 날 경우 그 책임을 대리운전 이용자가 져야 하는 경우가 많다. 보험 없이 업체를 운영하는 곳이 많고, 사업자 등록도 하지 않은 채 몇몇 대리기사가 알음알음으로 운영하는 업체도 부지기수다.
지난 8일엔 대리운전을 하다 행인을 치어 숨지게 한 뒤 도주했던 대리기사 B씨가 검거됐다. 다행히 B씨는 검거됐지만 경찰 등에 따르면 대리기사가 뺑소니 사고를 낼 경우 가해자를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대리기사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업체가 상당수이기 때문이다.
권익위 관계자는 “대리운전 관련 각종 분쟁과 피해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며 “관련 법안 입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권익위는 2010년 12월 국토해양부에 대리운전자 보험 가입 의무화, 대리운전 업체 등록제 도입, 대리운전 업체·운전자 관리 강화, 대리운전 약관 제정을 통한 분쟁 해소 등 ‘대리운전 피해방지 제도개선 방안’을 권고했으나 입법화가 여태 이뤄지지 않았다. 새누리당 강기윤 의원이 지난달 국회에 제출한 대리운전법 제정안이 계류돼 있을 뿐이다.
정승훈 기자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