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소수자 우대정책’ 법 심판대에… “다양성 존중위해 필요” VS “평등 침해하는 악법”
입력 2012-10-11 18:47
미국 사회를 특징짓는 관용의 증거로 종종 거론되는 소수자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이 법의 심판대에 올랐다. 다양성을 존중하기 위해 필수적인 제도라는 주장과 평등을 침해하는 악법이라는 주장이 정면으로 맞붙었다.
백인 여학생 아비게일 피셔(22)가 텍사스대의 소수자 우대정책이 평등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내용의 위헌소송을 낸 건 지난 2월. 2008년 텍사스대 입시에서 불합격한 그는 비슷한 성적의 흑인이나 라틴계 학생들이 ‘어퍼머티브 액션’ 덕분에 합격했는데도 자신은 입학이 거절된 것은 역차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1·2심은 피셔의 패소로 끝났다. 10일(현지시간) 워싱턴DC의 연방대법원 청사에서 피셔 재판 첫 상고심 심리가 열렸다.
2003년에도 대법원은 미시간대 로스쿨의 소수자 우대책을 심리해 ‘합헌’ 결론을 내린 적이 있다. 그 땐 진보 성향이었던 샌드라 데이 오코너 대법관의 캐스팅보트에 힘입은 바 컸다. 대법관들의 의견이 4대 4로 갈린 상황에서 대법원장이 합헌 쪽으로 표를 던진 것이다.
이번은 상황이 다르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을 포함해 9명이다. 존 로버츠 주니어 현 대법원장은 소수 인종 우대 정책에 회의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 정부에서 법무차관을 지내며 소수자 우대 정책을 집행했던 엘레나 케이건은 심리에서 빠졌다. 남은 8명 중 새뮤얼 알리토와 안토닌 스칼리아·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은 보수 성향으로 분류된다. 소니아 소토마이어 등 다른 대법관 3명은 ‘어퍼머티브 액션’의 지지자로 알려져 있다. 미국 언론들은 “중도파인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의 결정이 중요해졌다”고 보도했다. 4대 4 동수일 경우 결론은 합헌이다.
9년 만에 같은 사안이 다시 심리되는 것은 어퍼머티브 액션이 그만큼 논란이 거센 사안임을 의미한다. 2003년 당시에도 대법관들은 “언젠가는 없어질 제도”라고 판시했다.
찬성하는 쪽에서는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이 엄연히 존재하는 만큼 우대책을 폐지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한다.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이 많이 입학하는 것은 경험의 차원에서 백인 학생에게도 이익”이라는 게 텍사스대의 주장이다. 반대 쪽 논리는 “어퍼머티브 액션이 (소수인종이지만) 특혜 받은 계층의 학생들을 위해 활용된다”는 것이다. 소수인종이면서도 학생들의 성적이 우수해 ‘어퍼머티브 액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아시아계 시민단체들도 위헌 의견서를 냈다.
‘어퍼머티브 액션’은 인종 성별 종교 장애 등의 이유로 불리한 입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혜택을 줘 실생활에서 행해지는 차별을 상쇄하기 위한 조치다. 1961년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통해 처음 시행한 뒤 대학입시는 물론 취업과 승진 등 여러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대법원이 어느 정도로 판시하느냐에 따라 판결이 민간 분야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했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