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민중경제학자의 삶·학문세계 재조명… ‘유인호 평전’

입력 2012-10-11 18:10


유인호 평전/조용래/인물과사상사

민중경제학자 일곡 유인호(사진·1929∼1992). 그는 한국 사회에 경제 민주화, 농업협업화, 공해 문제 등을 처음으로 제기한 경제학자다. 그의 이름은 대중의 뇌리 속에 각인되지 못했다. 학문적 유행과 정치 변동에 민감한 한국의 지적 풍토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 연원을 둔 그의 학문 세계를 온전히 포용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민중을 내세우는 그의 비판의식은 18대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경제민주화’ 논쟁이 한창인 데서 보듯 여전히 유효하다. 그의 20주기를 맞아 유인호의 삶과 경제학의 본령을 다룬 평전이 나온 것은 그래서 다행스럽다.

평전은 제자로서 유인호의 학문세계와 현실적 실천을 생생히 목격했던 국민일보 조용래 논설위원이 썼다. 유인호의 삶은 말 그대로 사상투쟁 생활투쟁 학문투쟁의 악전고투였다. 지독한 가난을 이겨냈던 배움에의 열정, 해방 공간에서의 구국 투쟁, 일본 리쓰메이칸대학 유학 중 맛본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학문적 기쁨, 한국인 차별에 당당히 맞섰던 의분 등 그의 삶은 굴곡진 현대사와 궤를 같이 한다.

유인호의 민중경제학은 마르크스의 그것과 흡사해 보인다. 하지만 그는 남북이 대치한 한국적 상황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 가진 한계를 인정할 줄 아는 유연한 사고의 소유자였다. 박정희 군사정권의 경제정책을 모색하는 재경위 상근위원을 하면서 국가 발전 전략을 고뇌한 애국자였다.

박정희 정권은 그가 제안한 농업협업화를 통해 활로를 모색하기보다, 공업을 통한 수출 주도형 발전 전략을 택했다. 하지만 압축 성장은 우리 사회에 지역·산업 간 불균형 성장, 정경유착, 빈부 격차, 환경문제, 사회적 비민주화 등 엄청난 폐해를 남겼다. 현대사가 그를 다시 불러내는 건 이 지점이다. 유인호의 비판 경제학은 성장을 위한 경제가 아니라 생활을 위한 경제를 강조한다. 1980년 서울의 봄 때 제시한 경제기본권 7가지는 혜안이 돋보인다. 사회적 계층 간의 경제적 균형, 경제력의 집중을 막을 제도적 장치 주장 등이 그것이다.

저자는 제자라는 부담감에도 불구하고 스승의 학문적 공과를 평가하는 데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려 애썼고, 개인적 간난에 대해선 공감을 아끼지 않는다. 평전으로서의 향기를 잃지 않은 절제가 돋보인다.

손영옥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