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배회하는 늑대의 심장으로 쓰다… 신용목 시집 ‘아무 날의 도시’

입력 2012-10-11 17:53


도시에 서정의 칼날을 갖다댄다면 그것은 어김없이 폐허의 표피를 벗겨내는 일이 될 것이다. 그만큼 도시는 폐허를 견디는 공간이다.

신용목(38)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아무 날의 도시’(문학과지성사)는 도시라는 폐허에 사로잡힌 포로의 입장에서 써내려간 자서전에 비견된다. 시집 뒤표지에 적힌 시인의 짧은 산문은 시집의 탄생 비화를 엿보게 한다. “한 무더기 깨진 불빛으로 반짝이는 도시에서, 나는 겨우 한 줌의 폐허를 꺾어 왔다. 화병의 꽃이 죽음의 향기를 피워 올릴 때, 그 향기에 세상의 심장이 조금씩 상해갈 때.”

경남 거창 출신인 신용목이 이전 시집에서 ‘농경문화의 서럽고 아름다운 퇴적층’을 탐사하는 데 주력했다면 신작 시집에서는 도시적인 것과의 정면 대결을 펼치며 묵시록적 아우라를 자아낸다.

“식당 간판에 배고픔이 걸려 있다 저 암호는 너무 쉬워 신호등이 바뀌자/ 어스름이 내렸다 거리는 환하게 불을 켰다/ 빈 내장처럼// (중략)// 불빛의 내벽에서 분비되는 어둠의 위액들 그 속에 웅크리고 앉아 나는/ 너를 잊었다”(‘아무 날의 도시’ 부분)

사람들이 식당 간판을 쳐다보는 이유는 배가 고파서 일 것이다. 도시에서 우리가 얻은 것은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허기이고 잃은 것은 ‘너’이다. 결국 남아 있는 건 아무 것도 없고, 모든 것을 삼키고만 도시의 거대한 내장만이 꾸루룩 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허기와 절망으로 점철된 도시를 시인은 떠나지 않고 견디고 있다. 또한 쉽게 구원받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 지점이야말로 신용목이 채굴하고 있는 도시적 서정의 깊이를 담보하는 중심축인 것이다.

“우럭이 관 속에 누워 있다/ 몇 마리 우럭들, 우럭의 영혼으로 헤엄친다 산 것들이 죽은 것의 영혼인 물속/ 연기의 문장으로 맴을 돈다// 한 생이 무덤 속이었던 우럭/ 물속에서 타 죽은 우럭”(‘나도 가끔 유리에 손자국을 남긴다’ 부분)

시인은 수족관의 우럭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저것은 살아 있는가 아니면 죽어 있는가. 시인은 이렇게 대답한다. 저것은 물 속에서 타 죽었다. 그렇다. 우럭은 물 속에서 타 죽는 존재가 되고 만다. 그렇기에 우럭의 움직임은 ‘연기의 문장’으로 변주된다. 유리에 손자국을 남기는 시인이라고 해서 우럭과 다르지 않다. 시는 이어진다. “나도 가끔 창밖을 본다 철 지난 부음처럼 낙엽은 날아와 부딪치고 흘러내리는/ 손자국, 한 칸씩 허공은 투명하게 질러놓은 관짝들이다/ 가을은 눈부시게 출렁이는 공동묘지”

신용목은 인간이 잠든 시간에 도시를 배회하는 한 마리 늑대의 심장을 가진 시인이다. 시집은 그가 2007년 중반부터 2012년 중반에 이르는 5년 동안 도시의 포로로 살아온 기록이다. 이 시기는 MB 정권의 집권 기간과 겹쳐진다는 점에서 시인은 모종의 정치적 저항의식까지 이번 시집을 통해 드러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죽은 자의 메아리를 잘라왔다 불탄 구름이 흐린 재로 흩날리는 광장에서/ 목을 잃은 혀가/ 부르는 노래 시체의 목소리 속을 떠도는 바람의 목에 걸어 주는 긴 머플러// (중략)// 그리고 도심의 방 환한 무덤에 쌓여 있는 종이들 관짝의 먼지 낀 뚜껑을 열고/ 시체의 배 속에 남아 있는 밥알을 씹는다”(‘죽은 자의 노래로부터’ 부분)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