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박종록] 대통령은 乙이다
입력 2012-10-11 18:33
대선주자들의 경쟁이 한창이다. 대통령의 자질이랄까 대통령이 지녀야 할 덕목에 관해 개괄적으로 살펴보면 경륜, 신뢰감, 민주적 리더십, 추진력, 청렴성, 인재 등용의 혜안, 포용력 등을 들 수 있겠다. 대선주자들은 당연히 자기만 이같은 자질을 두루 갖추었으니 지지해 달라고 외치지만 과연 그럴까.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을 회고해 보면 우리의 신뢰와 선택이 후회로 남는 경우가 더 많았음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운명체는 시스템과 룰에 의해 유지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감당하지도 못할 복지수준의 향상이나 룰을 넘어서는 관용과 혜택이라는 사탕발림 유혹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선거 때만 되면 되풀이되는 선전과 선동, 위선적인 행태에 더 이상 속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소위 ‘선거는 바람’이라며 유권자의 정상적인 판단을 흐리게 하는 술책에 휩쓸리지 않아야 한다. 무분별한 복지의 확대는 재정파탄을 초래해 국가적인 재난으로 귀결된다는 것은 오늘날 유로존의 재정위기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최근 국가경영전략 연구원이 주관한 대학생 100명이 참석한 세미나에서 ‘대통령은 ○○이다’라는 압축된 표현을 설문하자 ‘대통령은 을(乙)이다’가 1위로 뽑혔다는 기사가 나왔다. 참으로 의표를 찌르는 젊은이들의 발상이고 국민 대다수가 공감하고 있다.
우리는 역대 대통령들이 집권한 후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을의 입장이 아닌 갑(甲)의 위치에서 국민들과의 약속위반은 다반사고 오히려 해악과 고통을 주기까지 했던 것이다. 원래 갑, 을 관계란 신뢰와 약속을 전제로 한 계약관계를 의미하였다. 그러나 점차 갑은 주도적이고 우선적인 위치, 을은 수동적이고 부차적인 위치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여 대한민국 국민은 우리가 위임한 모든 권력에 대하여 갑의 입장에 있음을 명시하고 있고 헌법 69조에서는 대통령 당선자는 취임선서에서 다시 한번 을의 입장에서 책임과 의무를 다할 것을 국민 앞에 서약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우리는 퇴임하는 그날까지 국민 앞에 을의 입장에서 약속과 선서를 지키고,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노력하는 대통령을 가지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두 달 후 그 선택은 우리 손에 달려 있다. 무능하고 부패하고 편협한 을이 아니라 갑인 국민의 마음을 읽고 그 뜻을 존중하고 약속을 지키는 능력과 자질을 가진 을, 증오와 분열의 시대를 극복하고 관용과 통합의 시대를 열어가기 위하여 노력하는 을, 복지와 건전재정의 균형을 잘 이루어 낼 수 있는 을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유력대선 후보들의 캠프에 기백명의 교수나 학자가 몰리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한탄하는 국민들이 많다. 이들이 과연 그 후보가 을이 되었을 때 국정운영에 보탬이 될 것인지가 문제인데, 오히려 집권을 위한 위선과 술수, 책략, 공약남발의 진원지가 되고 집권 후에는 을에게 부담을 주어 결과적으로 갑의 뜻에 반하는 애물단지가 되지는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각 후보들의 공약이나 약속은 크게 다를 바 없다. 우리는 현란한 말로 국민의 마음만 도둑질하려는 을이 아니라 진실성, 진정성을 가지고 우리 국민에게 더불어 잘 살아가려는 의지와 노력을 고취시킬 수 있는 지도력을 가진 을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진보든 보수든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우리는 혈연 지연 학연 등 연줄에 흔들리지 않고, 위선과 선동 구호에 기만당하지 않아야 할 것이며, 냉철한 눈으로 후보들의 실체를 직시해 지도자의 덕목만을 잣대로 하여 국리민복을 최우선으로 하는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며 손가락을 자르고 싶다는 시행착오는 더 이상 없어야 한다.
박종록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