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조용래] 교토대

입력 2012-10-11 18:33

법고창신(法古創新). 옛것을 토대로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이다. 정재정 서울시립대 교수는 ‘교토에서 본 한일통사’(2007)에서 교토(京都)를 그렇게 한마디로 요약한다.

‘창신(創新)교토’를 주장하는 배경으로 정 교수는 교토의 끊임없는 변신을 꼽는다. 사람들은 흔히 교토를 천년 고도(古都)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창신교토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에서 지혜를 얻어 첨단 도시로 거듭나왔다는 것이다.

교토 시내에는 2000여개의 절과 신사가 있고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 발에 차일 정도다. 하지만 인구는 겨우 150만명이다. 그런데도 그곳에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대학과 연구소가 있다. 대표적인 곳이 도쿄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교토대다.

교토대는 도쿄제국대(1887)에 이어 1897년 제국대학으로 설립됐다. 자유를 중시하는 교토제대의 전통은 패전 후에도 이어졌다. 그것은 교토대가 손꼽히는 주요 학술거점이 된 한 원인이기도 하다. 예컨대 기초물리학연구소를 비롯한 교내 연구소와 연구센터 대부분을 ‘전국공동이용 연구소·연구센터’로 운용한다. 연구자의 자유로운 교류가 활발하다는 뜻이다.

더 큰 자랑거리는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5명이나 냈다는 점이다. 일본인 노벨상 수상자는 총 19명(1명은 미국 국적)인데 도쿄대 출신이 7명으로 가장 많다. 다만 문학상의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오에 겐자부로, 평화상의 사토 에이사쿠를 빼면 과학분야 수상자는 교토대가 도쿄대 4명을 앞선다.

올해 의학·생리학상을 받은 야마나카 신야는 고베대 출신이나 교토대 재생의료학연구소 소속이니 범 교토대로 분류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교토대는 과학분야 수상자가 6명이다. 이 분야에서 아직 단 한 명도 수상자를 못 낸 우리로서는 참 부러운 대목이다.

교토대는 규모도 그리 크지 않다. 대학원생 9000여명을 포함해 재학생수는 약 2만명이다. 대학원생을 포함해 2만6000명이 넘는 서울대보다 적은 규모다. 중요한 건 규모가 아니다. 국가 차원에서 기초과학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 자유로운 연구풍토, 연구만 전담하는 교수직의 존재다.

사실 이공계 기피 현상은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당장의 돈벌이만을 강조하는 우리 사회의 천박함, 진득하게 한 우물을 팔 수 있도록 연구자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 대학사회, 유행을 좇는 것처럼 연구 프로젝트 수주에 혈안이 된 교수들…. 이런 풍토에서 법고창신은커녕 감동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