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민태원] ‘환자안심병원’ 잘 될까
입력 2012-10-11 18:23
몇 해 전 시골에 계신 기자의 아버지가 건강기능식품을 잘못 드시고 간독성(간성혼수)이 와 서울의 대학병원에 응급 입원한 적이 있다. 아버지는 십수년째 중증 알코올성간경화를 앓고 있었다. 갑작스런 아버지의 ‘상경 입원’에 자식들이 모여 간병 문제를 고심했다. 논의 끝에 평일 낮에는 누나가 하루 종일 곁을 지켰고, 밤에는 기자와 남동생이 밤샘을 하며 1주일을 버텼다. 가정과 직장 생활에 지장을 받은 것은 당연했다.
이 정도는 약과다. 암 등 중증 질환으로 오래 입원하는 경우 가족들은 생계를 제쳐놓고 비좁은 병실 한켠에서 쪽잠을 자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집안에 환자가 있으면 병원비도 병원비지만 이처럼 간병하는 일이 보통이 아니다. ‘간병하다 골병 든다’는 말도 나온다. 뇌졸중에 걸린 남편을 지키던 아내가 대장암에 걸리고, 소아병동에서 암과 투병 중인 아들을 간병하다 쓰러진 어머니의 사연이 뉴스에 소개되기도 한다.
최근엔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된 일본에서 사회문제로 대두된 ‘간병 자살’이나 ‘간병 살인’ 소식도 우리 주변에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실제로 지난 8월 충북 옥천에서 관절염 등으로 거동이 불편한 부인(75)을 10년 넘게 간병해 온 남편(78)이 “사는 게 너무 힘들다”는 말을 남기고 부인과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간병 문제의 대안으로 몇 년 전부터 이른바 ‘보호자 없는 병실’이 주목을 받았다. ‘보호자 없는 병실’은 전문 간병 인력을 병실에 배치해 보호자 대신 환자 세수와 목욕, 대소변 등 개인위생 보조와 식사, 운동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환자 1인당 간병비 부담은 하루에 3만∼4만원 선이다.
보건복지부는 2007∼2008년 4개 대학병원, 2010년 병원급 이상 10곳에서 ‘보호자 없는 병실’을 시범 운영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보호자 없는 병실’의 제도화는 결코 녹록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가 보험급여화할 경우 최소 2조원의 예산이 든다는 것. 또 하나 난제는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간병인의 명확한 역할 구분이었다. 환자를 돌봄에 있어 이들 직능의 역할이 모호했고, 정부는 엄청난 반발이 두려워 그 구분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결국 시범운영 후 점차 늘리려던 계획은 중단됐다. 다만 복지부는 올해 말 나오는 새로운 간병 서비스 모델에 대한 연구용역 결과를 보고 지속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런 와중에 서울시가 이르면 다음달부터 서울의료원에서 보호자 없이 간호사가 간병하는 ‘환자안심병원’을 운영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전체 623병상 중 중환자실, 격리병상, 가족 간병을 원하는 병상을 제외하고 230병상을 보호자 없는 병실로 운영한다는 것이다. 보통 5∼6인실에서 1명의 간병인이 공동 간병하는 기존의 보호자 없는 병실과 달리 전문성이 담보된 간호사들이 24시간 보호자 역할을 해 준다는 것이 특징이다.
두말 할 나위 없는 최상의 모델이긴 하지만 문제는 인력과 예산이다. 서울시는 간호사 공개 채용 등을 통해 간호사 1명이 관리하는 환자 수를 현행 18명에서 일본과 같은 수준인 7명까지 낮춰 의료 서비스의 질을 높이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큰 법이다. 간호사 확충에 따른 인건비 부담은 물론 단순 수발 서비스에 대한 간호사들의 거부감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결국 간호조무사, 간병인 등이 혼재된 시스템을 택해야 하고, 결국 이들 직능의 역할 구분 문제에 또 부닥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민태원 정책기획부 차장 twmin@kmib.co.kr